본문 바로가기
story

인사

by mitsuyui 2023. 11. 21.

(뫄님 커미션)

페양&파칭

하야시다 하루키는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밥을 먹기 위해 도시락을 열다가 손을 멈춘 그가 테이블에 둘러앉은 사람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항상 밥을 같이 먹는 료헤이가 옆에 앉은 것은 너무나도 당연스러운 이야기고, 가끔 합류하는 미츠야가 앞에 앉은 것 역시 어느 정도 익숙한 일이었다. 그런데 미츠야의 옆에 앉은 유이는 익숙하기보다는 낯선 풍경에 가까워서, 그는 눈을 게슴츠레 뜨며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료헤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 역시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인지, 멀뚱멀뚱 자신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결국 서로에게서 정답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다시 유이에게로 시선을 돌린 하루키가 집게손가락으로 그녀를 가리키며 물었다. 질문의 대상은 그의 의문을 해결해줄 수 있는 누군가였다.

“어이, 유이. 너는 왜 여기에 있냐?”
“그래. 파칭은 바보라 이런 거 설명 안 해주면 모른다고!”
“얌마, 페양! 너도 모르잖아!”

옆에서 거드는 건지 욕을 하는 건지 모르겠는 료헤이의 말에 발끈하며 테이블을 내려친 하루키가 어정쩡하게 서 있는 자세 그대로 다시 유이를 가리켰다. 손가락 끝에는 태연하게 도시락을 먹고 있던 유이가 먹던 것을 멈춘 채 젓가락을 쥐고 멀뚱히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학교 동급생들이 전부 두려워하고 기피하는 도쿄 만지회를 대한다기에는 너무나도 태연하고 평범한 반응에 항상 당황하는 건 그들의 몫이었다. 유이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겁먹지도, 멀리하지도 않았다. 주변에 양키가 여럿 있기 때문에 별로 무섭지는 않다며 그 이유에 대해서는 이미 들은 바가 있지만, 유이처럼 편견도 겁도 없이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사람은 드물어서 당혹스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어쨌든, 일반인에 여자를 건드리는 것은 도쿄 만지회 내에서도 하루키와 료헤이의 신념 속에서도 통용되지 않는 일이라 유이가 다가온다고 해서 해코지할 생각 같은 건 없지만… 이렇게 점심까지 같이 먹게 되는 것은 예상에 없었다. 그런데도 미츠야는 태연하기 짝이 없는 반응이라서, 하루키는 그와 유이의 다시 한번 얼굴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음. 사실 오늘 이렇게 점심을 같이 먹게 된 이유는… 알려줘야 할 게 있어서야!”
“맞아. 같은 학교기도 하고, 둘 다 소중한 친구들이니까… 알려주는 게 맞는 것 같아서.”

하루키는 소중한 친구들이라는 단어에 감동을 받고 싶었지만, 어떤 말을 할지 예측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 쉬이 감동을 받을 수도 안심을 할 수도 없어서 그냥 도시락통과 젓가락을 꽉 붙잡고 미츠야를 바라보았다. 평소라면 누가 무슨 이야기를 해도 관심이 없겠지만, 미츠야와 유이가 자신과 료헤이에게 할만한 이야기가 뭐가 있겠냐는 말이다…. 안 그래도 난 바보라 이런 거 모르는데. 하루키가 긴장과 함께 억울한 마음을 삼켰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미츠야도 유이도 입을 열지 않고 서로를 바라보며 눈빛을 교환할 뿐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옆을 살피니 료헤이 역시 그와 같은 얼굴로 미츠야의 입만 뚫어져라 보고 있다는 점이었다.

“어이, 미츠야.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데! 뭔 이야기 하나가 그렇게 오래 걸리는 거냐.”
“그래, 파칭은 참을성이 없어서 빨리 말해줘야 한다고. 심각한 이야기냐? 유이랑 관련 있는데 우리한테도 해야 할 것 같은 말이 그게 뭔데 도대체!”

그 조급한 마음이 티가 너무나도 난 나머지, 미츠야는 조금 더 뜸을 들이다가 이야기하려던 마음을 고쳤다. 놀리는 건 여기까지 해야 하나…. 심각한 일인 척 굳어있던 얼굴을 펴고는 그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막상 이야기하려니까 어떤 식으로 말할지 조금 망설이게 돼서, 그는 잠시 입을 열었다가 닫기를 반복하다가 고르고 고른 한 마디를 내뱉었다. 있지, 나랑 유이가…. 그 목소리를 더 정확하게 듣기 위해서 하루키와 료헤이의 몸이 앞쪽으로 쏠렸다.

“우리, 사귀고 있어.”
“뭐?”
“사귄다고. 나랑 유이가.”

하루키와 료헤이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눈을 깜빡거리며 멍하게 미츠야를 바라보다가 눈동자를 굴려서 유이를 살폈다. 그러고는 삐그덕거리며 몸을 돌려 서로의 얼빠진 얼굴을 한 번 보고는 다시 미츠야로 시선을 옮겼다. 그 반응에 유이가 작게 웃으며 물었다. 그렇게 놀랄 일이야? 하지만 그녀의 물음에도 영혼이 돌아오지 않은 채로 그저 고개를 끄덕거릴 뿐이어서, 유이는 미츠야를 힐끔 바라보다가 조용히 속삭였다. 있지, 미츠야. 괜찮은 거 맞겠지? 이런 반응일 줄은 몰랐는데…. 그 말에 미츠야는 어깨를 으쓱이며 태연하게 대꾸했다. 괜찮아. 저러다가 좀 있으면 정신 차릴 거야.

그들이 제대로 된 언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은 삼 분 정도가 흐른 후였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앓는 소리를 내던 하루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테이블을 짚고는 한참 동안 미츠야랑 유이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다시 앓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 앉았다. 웃긴 광경이었지만 어떤 마음으로 그런 건지 이해가 되는 료헤이는 차마 그 광경에 무슨 말을 얹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것도 잠시, 결국 뭐라 말도 못 하고 답답해하는 하루키를 위해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농담이 아니고 진짜 사귄다는 거지?”
“응. 새끼손가락 걸고 맹세해, 진짜 농담 아니고 우리 사귀고 있어!”
“아니… 언제부터? 도대체 어쩌다가 둘이 그런 관계가 된 건데?”

얼떨떨해 보이는 료헤이를 보며 유이가 잠시 고민하더니 말을 이었다. 으으음. 뭐라고 해야 하지? 아직 오래된 건 아니야. 얼마 안 됐어. 그러고는 미츠야를 한 번 보고는 작게 미소 짓더니 쑥스러운 건지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는 모습에 료헤이는 그 어떤 말도 이을 수가 없었다. 거짓말이라고 의심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진심이 가득한 모습에 어떤 반응을 해줘야 한단 말인가. 둘이 사귄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 둘의 모습을 보니까, 좋아서 죽겠다는 듯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한눈에 보여서 그 어떠한 반응도 하지 못하고 그저 눈을 깜빡거렸다.

“어쩌다가 사귀게 된 거냐면, 어… 내가 유이한테 한눈에 반해서 고백을 했는데, 유이가 받아줘서 사귀게 됐다고 해야 하나. 그냥 평범하게 고백하고, 받아준 거지. 그래서 항상 고맙기도 하고, 가끔은 안 믿길 때도 있어. 우리가 같은 마음이었다는 게.”
“뭐어? 난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미츠야는 안 좋아할 수 없는 사람이니까, 어떤 방식으로든 난 미츠야를 좋아하게 됐을 거야.”

그 말에 하루키가 양손으로 얼굴을 연거푸 쓸어내리다가 료헤이를 바라보더니, 결국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홀로 무언가의 결심을 내렸다. 그의 눈동자는 여전히 정처 없이 흔들렸지만, 표정만큼은 태연하기 짝이 없었다. 물론 친구들의 연애 소식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딱히 그들이 이렇게까지 격하게 반응할만한 충격적인 소식도 아니었지만, 연애하는 당사자들이 유이와 미츠야라는 점에서 거대한 충격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미츠야는 언제나 여자한테 관심이 없었고, 항상 동생들과 자기 진로만을 좇았기에 이런 식으로 가장 먼저 연애 소식을 알릴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미츠야와 오래 본 사이로써, 과거의 그들에게 미츠야가 연애한다는 소식을 알려주면 비웃음이나 받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믿기지 않다가도, 서로를 바라보는 유이와 미츠야의 표정이 너무나도 행복해 보여서 하루키는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친구들이 서로를 좋아하고, 그로 인해서 행복하다는데 거기다가 무슨 말을 얹을 수 있겠는가. 물론 둘이 사귄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쓸쓸해지기는 하지만 그에게는 비슷한 사정의 친구가 옆에 있었기에 둘을 마음 놓고 응원했다. 그가 옆에 있는 료헤이를 바라보며 엄지를 들어 올리자, 마찬가지의 표정이던 료헤이가 같이 엄지를 들었다.

그리고 그런 한 편의 콩트 같은 모습에, 유이는 그만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트렸다. 하여간, 둘이 붙어있으면 웃음이 마를 일이 없었다. 아무런 분란도 문제도 없이 무사히 연애 소식을 전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이후로도 장난처럼 주고받는 친구끼리 사귀는 거 아니다 어쩐다 하는 이야기에 그저 말없이 잡은 손을 보여주면서, 그들은 같은 학교 친구인 하루키와 료헤이에게 가장 먼저 연애 소식을 전했다.

드라켄&마이키

유이는 약간 긴장한 상태였다. 알록달록한 색으로 꾸며진 음식점에서, 모처럼 미츠야의 앞자리가 아닌 옆자리에 앉은 그녀는 긴장으로 굳은 손을 만지작거리며 괜히 애꿎은 시계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늘은 미츠야의 친구들에게 인사를 하기로 한 날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가족들에게 인사를 드리러 가는 것도 아니고, 친구들에게 인사하는 게 무슨 긴장할만한 일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인사하는 상대가 무적의 마이키라 일컫는 사노 만지로라면 약간 이야기가 달랐다. 사노 만지로. 또래에서는 이미 유명한 이름이었다. 누군가에게는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했고 누군가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유이는 그 이름에 어떠한 감정을 품지 않았지만, 그래도 막상 만나본다고 생각하니까 혹시라도 무슨 문제가 생길까 봐 살며시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미츠야의 친구인 동시에 치후유가 속해있는 집단의 우두머리였고, 그 외에도 하루키나 료헤이랑도 깊게 엮여있었으니까 이왕이면 밉보이고 싶지 않은 건 당연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츠야가 직접 소개해주고 싶다고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서 평소보다 조금 더 떨리는 것도 있었다. 케이스케나 핫카이처럼 길에서 만나서 소개를 시켜주는 경우도 아니고, 먼저 자리를 마련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일은 정말 드물었으니까. 그만큼 소중한 친구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약간 긴장되네…….”
“걱정하지 마, 유이. 둘 다 너를 마음에 들어 할 거야. 너도… 만나보면 마음에 들 거고. 둘 다 정말 좋은 애들이니까. 그러니까 긴장 풀어.”

그렇게 이야기하고는 미츠야는 꼼지락거리는 유이의 손을 자신의 손으로 덮었다. 어쩐지 그 짧은 행동에 마음이 놓여서, 유이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미츠야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를 가만히 바라보니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학교에서 도는 소문만 듣고 멋대로 추측하고 걱정한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사노 만지로와 류구지 켄, 그 둘은 도쿄 만지회의 주축인 만큼 많은 이의 입에서 오르내리기도 하고 가끔은 말도 안 될 정도로 부풀려진 소문이 돌기도 했다. 매번 소문으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된다며 스스로 그러지 말자고 다짐하면서도, 나도는 이야기에 휩쓸리지 않는 건 생각보다 훨씬 어려워서 가끔 소문으로 인해 편견을 가지기도 했다. 아마 치후유랑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면, 그녀는 자신이 양키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유이는 주변 사람들 덕분에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이 확실하다는 점이었다. 만나기도 전에 판단을 내려버리는 건 그른 것. 유이의 기준에서는 옳지 못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만나기 전까지는 멋대로 겁먹지 말자. 어떤 사람인지 판단하는 것은 만난 후에 해도 충분했다.

그렇게 다짐한 유이는 둘이 오기 전까지 시킬 음식을 고르면서 미츠야와 이야기를 나눴다. 약속 시간까지는 대략 십 분 정도가 남은 여유로운 상황이었기에 느긋하게 음식을 고르고 있다 보니, 어느새 가게의 입구에서 종소리가 들리며 누가 봐도 양키로 보이는 행색을 한 이들이 들어와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이는 거구에다가 머리에 용 문신이 있어서 눈에 띌 수밖에 없는 류구지 켄이었다. 우와, 크다. 유이는 중학생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키에 놀랐지만 애써 태연한 척 그를 힐끔거렸다. 사실 이렇게까지 키가 큰 사람은 학교에서도 길거리에서도 만나기 드물어서,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계속 시선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제대로 된 소개를 받기 전에 힐끔거리는 건 너무 무례한 행동 같아서, 그녀는 일부러 시선을 돌려 미츠야를 바라보았다.

“마이키, 이쪽.”
“켄 찡, 미츠야 저쪽에 있어.”
“어. 봤다. 구석에 있어서 잘 안 보였네.”

성큼성큼 테이블로 걸어오는 그들은 거침없었고,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그 나이대의 남자아이다운 앳된 티가 더 확연하게 보였다. 그리고 그들이 테이블 앞에 오자, 유이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앉은 상태에서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아키바 유이라고 해요.”
“마이키, 드라켄, 인사해. 이쪽은 내 여자친구인 유이야.”
“아아, 류구지 켄입니다. 마이키, 너도 인사해야지.”

게슴츠레 눈을 뜨며 유이를 바라보던 만지로는, 켄이 인사를 종용하며 톡 치자 그제야 의자에 풀썩 뛰어들며 인사했다. 나는 사노 만지로야. 미츠야의 여자친구라니, 내가 살다 살다 미츠야의 여자친구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어쩜 만나는 사람들마다 이렇게 똑같은 소리를 하는 건지. 그가 여자친구를 사귀는 일이 이렇게까지 신기할 일로 여겨질 거라고, 과거의 유이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이전까지는 여자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유이는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쑥스러우면서도 기분이 좋았지만.

“동갑인데, 편하게 말해도 되나?”
“응. 그리고 편하게 성 말고 이름으로 불러줘.”
“그래. 유이라고? 미츠야의 여자친구라니……. 마이키랑 같은 소리를 하고 싶진 않았는데, 미츠야한테 여자친구가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지 뭐냐.”
“응, 미츠야는 여자한테 관심 두는 경우가 드무니까.”

만지로는 잠시 미츠야를 한 번 힐끔 바라보고는 말을 삼켰다. 미츠야가 널 엄청 좋아하나 봐. 이렇게 소개시켜준 걸 보면. 굳이 할 필요가 없는 말인 것 같아서, 이번만큼은 내뱉는 것보다는 침묵하는 걸 선택한 그가 유이와 미츠야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여자친구가 있는 미츠야라니. 물론 여자친구를 사귀는 일 자체는 별로 놀라울 게 없었지만 미츠야가 여자친구를 사귄다고 생각하니까 조금 어색하게 느껴지기는 했다. 애초에 처음 그가 여자친구를 소개해주고 싶다, 라고 이야기했을 때부터 그 단어의 조합이 무척 어색하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그래도 미츠야가 만나는 사람이라면 의심할 여지 없이 좋은 사람일 게 분명했기에, 만지로도 켄도 흔쾌히 소개해달라고 이야기했다. 이전부터 미츠야는 사람 보는 눈이 좋았다. 또, 만나고 있다고 해서 무조건 친구들에게 소개시켜주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는 편도 아니어서 이렇게 자리까지 마련할 정도면 미츠야의 마음이 진심이라는 것 정도는 쉽게 알 수 있었다. 괜히 오랜 친구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은 미츠야와 유이의 첫 만남 이야기부터 어쩌다가 사귀게 된 건지, 언제부터 사귄 건지와 같은 간단한 이야기를 하며 나온 음식을 먹었다. 오므라이스 정식에 깃발이 꽂혀있지 않아서 만지로가 깃발이 없으면 못 먹는다고 선언해버린 작은 헤프닝이 있었지만, 그마저도 켄이 익숙하다는 듯이 주머니 속에서 꺼내든 깃발 덕분에 별문제 없이 넘어갔다. 한참을 미츠야와 유이의 이야기나 학교 이야기처럼 평범한 일상 이야기를 이어 나가니 금방 친해져서는, 유이는 처음 긴장했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편하게 그들을 대했다. 남자친구의 친구들이랑은 조금 친해지기 어려운 관계라고 생각했는데, 매번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그냥 금세 친해져서는 친구가 되어버린다. 유이는 생각했다. 좋은 친구들을 사귄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왜 안 좋은 소문들이 퍼진 건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만지로랑 켄은 좋은 사람이었다. 기본적으로 예의를 지킬 줄 알았고, 가끔은 어린아이 같이 굴다가도 이야기를 하다 보면 생각이 무척 깊은 게 느껴졌다. 그래서 유이는 소개받기로 결심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긴장으로 시작한 이 인연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처음 본 사이였기 때문에 조금은 어색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기 때문에, 대화를 하다가 미츠야의 도움을 받는 경우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만지로랑 켄은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근데, 사귀는 사이라서 그런가? 확실히 둘이 잘 맞네. 잘 만났다고 해야 하나.”
“맞아. 친구일 때도 대화가 잘 통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금방 친해졌어! 처음 봤을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친해질 줄 몰랐는데. 사실 사귀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 과거의 나한테 이야기해주면 아마도 안 믿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까 도만이 집회했을 때 우연히 만난 거라고 했지. 따지자면 도만이 이어준 인연 아니야?”

만지로의 말에 미츠야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여상스레 대꾸했다. 글쎄. 집회가 없었어도 유이랑 나는 만났을 거야. 그 말에 친구의 연애가 어색하기라도 한 건지, 인상을 팍 찌푸린 켄이 미츠야가 보이지 않도록 손으로 가리고는 헛구역질을 하는 시늉을 했다. 드라켄, 나 다 봤거든? 안 보일 거라고 생각해? 미츠야가 어이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터트리며 이야기를 했지만, 보라고 한 것이기 때문에 켄은 그저 어깨를 으쓱이며 모르쇠로 일관할 뿐 사과는 없었다. 투닥거리기 시작한 미츠야와 켄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웃던 유이에게 침묵하고 있던 만지로가 오므라이스를 먹으며 이야기했다.

“미츠야가 좋은 사람 만나서 다행이야. 유이는 착하고, 미츠야를 아주 많이 좋아하니까. 미츠야도 유이를 좋아하구. 나도 유이가 마음에 들어. 모처럼 마음에 드는 친구를 사귀어서 좋달 까나.”

그러고는 작게 덧붙인다. 미츠야를 잘 챙겨줘. 사실 만지로는 미츠야가 뭐든지 알아서 척척 하기 때문에 그가 챙김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 정도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미츠야는 알아서 척척 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자라난 것이기에, 그는 이왕이면 미츠야가 조금 더 챙김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는 했다. 아마도 그뿐만이 아니라 미츠야의 친구들이라면 전부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그들과 함께 있을 때의 미츠야는 그저 또래의 남자아이지만, 함께 놀지 않을 때는 언제나 의지할 수 있는 아들이자 오빠가 되어야 했으니까. 만지로는 또래를 챙기는 방법 같은 건 몰랐다. 오히려 그는 챙김을 받는 입장이지, 언제나 누군가를 챙기는 입장에 서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친구라는 선 안에서 챙겨줄 만한 것은 너무나도 적었기 때문에, 그는 이 기회에 미츠야가 조금 더 챙김 받는 것에 익숙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가 봤을 때 유이와 미츠야는 서로를 너무나도 잘 챙기고 있는 것 같아서 내심 안심하기도 했다. 역시 이런 복잡한 고민은 나랑 안 맞아. 만지로는 턱을 괴고는 테이블 위를 오가는 대화를 바라보았다. 평화롭기 짝이 없다. 그가 바라는 일상이었다.

“둘이 결혼하면 역시 축가는 내가 불러야겠어.”

그러고는 뜬금없이, 한 마디를 내뱉는다. 갑작스러운 결혼 이야기에 실소가 터져 나오는 것도 잠시, 이내 미래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나가서 장래에 뭘 할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며 만지로가 생각했다. 역시 둘의 결혼식이 보고 싶어. 켄과 에마의 결혼, 조카의 탄생, 모두가 계속 친구인 채로 행복하게 사는 것, 그 외의 소망이 하나 더 생겨났다. 그는 미츠야와 유이의 결혼이 보고 싶었다. 오늘, 유이를 만나고 그녀와 함께 있을 때의 미츠야를 보니까 문뜩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녀와 함께일 때, 미츠야가 더없이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만지로는 언제나 친구들의 행복을 바랐기 때문에 감히 그 소망을 마음에 품고, 웃음이 가득한 광경에 뛰어들었다.
바지&치후유

노을이 질 무렵, 미츠야는 유이의 가방을 어깨에 비스듬하게 걸치고 그녀와 함께 걷고 있었다. 시험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라 모처럼 같이 저녁을 먹고 집에 바래다주려는 길, 슬슬 날이 쌀쌀해지기 시작할 시기라 그런지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미츠야는 얇아 보이는 유이의 옷을 바라보다가 입고 있던 겉옷을 주섬주섬 벗어서 그녀에게로 내밀었다.

“유이, 추운데 이거라도 입고 있어.”
“어? 하지만 미츠야도 춥잖아…! 나 별로 안 추워, 괜찮아!”
“나는 지금 좀 더워서, 나보다는 유이가 입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아까도 기침했잖아.”

필사적으로 거절하려는 유이에 미츠야가 작게 웃으며 조심스럽게 옷을 둘러주었다. 사실 유이가 추울 때 겉옷이 필요할 것을 대비해서 입기 시작한 것이기에, 오히려 그녀가 입는 것이 더 알맞은 용도라고 할 수 있었다. 농담이 아니라, 미츠야는 정말로 더웠다. 유이 역시 추위보다는 더위를 훨씬 많이 타는 편이었지만 이런 서늘하고 바람이 많이 부는 가을 날씨에는 기침도 많이 하고 추위에 떨기도 했다. 그러나 미츠야는 조금 달랐는데, 애초에 그는 한겨울에도 바람을 가로지르고 바이크를 타는 이였다. 집회를 할 때는 특공복만 입고 있을 때도 많았고, 어지간한 추위는 그저 일상일 정도로 꽤 많은 방식으로 계절을 겪어보았기에 그는 이 가을의 바람에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혼자 있었거나 친구들과 있었다면 바이크를 타며 가을바람의 서늘함을 즐겼을지도 모른다. 물론 유이의 입술 사이에서 기침이 새어 나오기 시작한 시점부터 가을의 서늘함은 비호감이 되어버렸지만. 유독 이번 가을은 추운 것 같아서 미츠야는 걱정되는 마음에 언제든지 줄 수 있도록 얇은 두께의 겉옷을 챙기기 시작했다. 이게 전부 낮에는 덥다가도, 해가 진 후에는 갑자기 쌀쌀해지는 이 괴상한 날씨 탓이었다.

같은 곳을 빙글빙글 돌면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어떻게든 집에 가는 것을 미루고 있던 시점에서, 유이가 무언가를 발견하고 눈을 크게 뜨더니 번쩍 손을 들었다. 그러고는 손을 붕붕 흔들며 소리쳤다. 치후유! 그 말에 유이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미츠야는 코너 쪽에서 나오고 있는 치후유와 그 옆에 있는 익숙한 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검은색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트린 채로 웃으며 무어라 떠들고 있는 바지 케이스케, 미츠야의 친구였다. 그들은 유이의 목소리를 들은 건지 이야기를 하다가 멈추고 목소리의 근원지를 찾기 위해 고개를 두리번거렸는데, 멀지 않은 곳에 있었기 때문인지 한 번에 찾아낸 치후유가 눈을 크게 뜨며 유이와 미츠야를 바라보았다.

“유이 누나? 미츠야 군?”
“뭐야, 미츠야잖아. 옆에는 누구냐, 미츠야?”

마찬가지로 손을 흔들며 그들의 쪽으로 다가오는 치후유에 반가운 눈치로 웃다가도 그의 뒤에서 따라오는 케이스케의 모습에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려 미츠야를 힐끔거리는 유이에, 미츠야가 한 발짝 앞으로 나서서 케이스케에게 대꾸했다. 언제 한 번 소개해주고 싶기는 했는데, 이렇게 만나다니… 신기한 우연이네. 미츠야의 말에 케이스케가 의아한 듯이 인상을 찌푸렸다가 유이를 힐끔 바라본다. 그 날카로운 눈초리가 무서울 만도 한데, 그녀는 이미 제 앞에 있는 낯선 이가 미츠야의 친구이자 치후유가 항상 이야기하는 ‘바지 씨’라는 것을 이미 깨달은 후였기에 태연하게 시선을 받아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치후유에게는 항상 좋은 이야기들만 들어서인가, 이상하게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좋은 사람이라는 인식이 박혀서인지 약간의 친밀감이 들기도 했다.

“인사해. 유이, 여기는 내 친구인 바지야. 바지 케이스케.”
“안녕하세요, 아키바 유이라고 합니다! 치후유랑 미츠야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편하게 말 놔도 된다. 어차피 동갑일 거 아냐? 그런데, 치후유 너 내 얘기를 했냐?”

그 말에 치후유도 자신이 얼마나 ‘바지 씨’ 이야기를 많이 했는지 깨닫기라도 한 건지,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어서는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며 부정하려고 했으나 이미 공공연하게 모두가 알고 있던 사실이라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치후유의 부정에 유이는 그저 웃었고, 그 웃음에 그는 입을 다물었다. 사실 치후유가 케이스케와 만나고 그를 따르게 된 이후부터, 유이와 만났을 때의 이야기가 대부분 케이스케로 도배된 것은 사실이었다. 특히 유이가 미츠야와 사귀게 된 이후부터 도쿄 만지회와 자신이 없을 때의 미츠야에 대해서 알기 위해 물어볼 때마다 치후유는 잔뜩 신이 나서는 미츠야로 시작해서 케이스케로 끝나는 이야기를 줄줄 늘어놓고는 했다. 그러니까 이 상황에 대해서 치후유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걸 알았는지, 그는 볼을 긁적거리며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릴 뿐이었다.

“그리고 바지, 유이는….”

미츠야가 말을 하다가 멈추고는 입 안에서 단어를 골라냈다. 뭐랄까, 친한 친구한테 여자친구를 소개한다고 생각하니까 조금 쑥스러운 것 같기도 했다. 하루키나 료헤이에게 처음 이야기했을 때의 반응이 떠올라서 그런 건지 약간 뭐라고 소개를 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 둘은 원래부터 유이랑 알고 있던 사이니 그냥 편하게 알려줬다고 해도, 생판 모르는 사이인 케이스케에게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해야 할지 망설여지는 건 당연했다.

“유이는, 내 여자친구야.”
“오우.”

반응은 즉각적으로 튀어나왔다. 물론 다른 이들에게 소개할 때처럼 격한 반응은 아니었지만, 케이스케 역시 미츠야가 여자친구를 사귀었다는 소식이 놀라운 건지 잠시 눈을 깜빡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하긴, 유이를 그저 홀로 좋아하고 있을 적에도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지도 티를 내지도 않았으니 다들 이런 반응을 하는 건 당연했다. 그렇게까지 의외인가 싶다가도, 그의 이전 행실을 떠올려보면 어느 정도 납득이 되기도 했다. 미츠야는 케이스케를 한 번 힐끗 바라보고는 유이의 손을 조심스럽게 붙잡았다.

“그러니까 지금, 치후유의 누나랑 미츠야 너랑… 사귄다는 거지?”

치후유의 누나라는 말에 튀어나올 뻔한 웃음을 삼킨 유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치후유와는 오래 보기도 했고 그만큼 편한 사이라서 누나 동생 하기도 했으니까. 가족 같은 관계라는 건 틀린 소리가 아니었다. 치후유 역시 똑같이 생각하고 있던 건지, 홀로 턱을 붙잡고 고민하는 얼굴을 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모습이 정말 남매처럼 닮아있는 것 같기도 해서 어쩐지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뭐, 나야 치후유처럼 좋은 동생이 생기면야 좋지. 하지만 태연한 유이와는 다르게 케이스케는 사뭇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걸까 싶을 정도로 진지한 표정을 지은 그가 말을 고르기라도 하는 듯이 입을 열었다가 떼기를 반복했다. 물론 사람을 들은 것으로 판단하면 안 되는 거지만, 듣기로는 이야기를 거침없이 하는 사람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유이는 조금 의아한 얼굴로 그를 살폈다.

“그럼 치후유가… 미츠야 너의, 매형인 건가?”

하지만 진지한 얼굴과는 다르게 입에서 나온 말은 의미를 알 수 없는, 그러니까 바보 같은 말이었다. 미츠야가 어이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바꿔서 말했잖아, 바지. 따지자면 내가 치후유의 매형이지. 치후유는 처남이고. 하지만 이것을 따지기 전, 애초에 유이와 치후유는 피붙이가 아니었기에 전제부터가 잘못된 이야기였다. 정말 듣던 대로의 사람이구나, 싶은 마음에 그녀는 케이스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실례인 것은 알지만 그녀가 만나본 유형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사람이라 신기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이… 어쨌든 미츠야 네가 여자친구라니,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너는 여자친구 안 사귈 줄 알았는데.”

불과 유이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여자친구를 사귈 거라고는 꿈에도 모르고 있었던 과거를 떠올리며, 미츠야가 어깨를 으쓱였다. 사람 마음이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좋아하게 될 거라고 생각도 못 하고 있다가도 좋아하게 되어버리고, 좋아할 거라고 확신했다가도 쉽게 식어버린다. 미츠야도 유이를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연애는 안중에도 없었을 게 분명했다.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을 주기적으로 만나고 없는 시간을 쪼개서 할애해야 한다는 것은 그에게 꽤나 큰 부담이었으니까. 좋아하는 사람과 사귀는 것은 모르겠지만,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는 죽어도 사귀지 못할 게 뻔했다. 그리고 유이와 만나지 못했다면 이렇게 온 힘을 다해서 좋아하는 경험도 못 했을 것이고.

“치후유 덕분이지. 유이랑 치후유가 모르는 사이였다면, 나는 유이랑 못 마주쳤을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마주쳤다고 해도 가까워지는 데 시간이 훨씬 많이 걸렸겠지. 나는 도쿄 만지회니까, 치후유랑 유이가 모르는 사이면 내가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이야기하고는 유이를 바라보자 그녀가 작게 대꾸했다. 그래도 결국 미츠야랑 나는 만났을 거야. 그 말은 미츠야 외에는 아무도 듣지 못했기에, 알아들은 그만이 작게 미소를 지으며 유이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치후유는 미츠야의 말에 뿌듯한 건지 어깨가 잔뜩 올라가서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이야기했다. 제가 조력자 역할이었다니 멋지네요! 처음 미츠야 군이 유이 누나에 대해서 물어볼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될 거라고는 예상도 못 했는데. 하기야, 그때의 치후유는 유이를 걱정하기 급급한 상황이었으니까. 혹여라도 섣부른 행동 탓에 상처라도 입을까 봐, 무슨 일이 있으면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잔뜩 경계를 했던 이전의 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그래도 둘 다 행복하니 다행인 거 아닐까. 둘 중 누구도 상처를 받지 않고 무사히 이루어지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치후유는 처음 사귄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심 안도했다. 걱정하던 일 같은 건 벌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치후유가 이어준 인연, 뭐 그런 건가.”

홀로 중얼거리던 케이스케가 덧니가 보이도록 씩 웃으며 치후유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잘했네, 치후유! 미츠야 너는 항상 뒤에서 챙기는 입장이었으니까. 동생들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언제나 고마운 게 많다. 그래도 이제는 서로 챙길 수 있는 사람이 생겨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우리 외에도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생겼잖냐.”

그렇게 이야기하고는 유이를 멀뚱히 보더니 손을 불쑥 내민다. 악수를 하자는 듯이 내밀어진 손에 유이가 잠시 그 손과 케이스케를 번갈아서 바라보다가, 얼굴 만연에 맑은 웃음을 잔뜩 짓고는 손을 마주 잡고 가볍게 흔든다. 그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자면, 그가 얼마나 미츠야를… 그리고 친구들을 생각하는지 알 것 같아서 마음 한구석이 따듯해진다. 좋아하는 사람의 주변에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안심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치후유가 따르는 사람이 이런 사람이라서, 그리고 케이스케라면 치후유의 존경하는 마음을 쉽게 다루거나 이용하지 않겠다는 생각에 마음을 놓게 되기도 한다.

“미츠야를 잘 부탁해.”
“응! 나도, 치후유를 잘 부탁할게.”

그러고는 둘 다 깔끔하게 악수를 주고받은 후 씩 웃었다. 어쩌면 안도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서로를 잘 아는 것도, 고작 한 번 본 거라서 서로에 대해서 파악이 된 것도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이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는 사실 하나만큼은 쉽게 예측할 수 있어서 안심할 수 있었다. 하기야 미츠야나 치후유가 나쁘게 구는 사람을 옆에 둘리도 없겠지만. 그렇게 서로를 잠시 바라보고 있다가, 점점 해가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모습을 힐끗거리며 바라본 케이스케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러면, 우린 이만 가보마. 컵라면을 사러 가려던 참이었거든.”
“아. 우리도 가볼게. 늦어지기 전에 데려다줘야 해서.”
“잘 가고, 나중에 집회 때 보자 미츠야. 언제 또 만나게 되면, 인사하고 지내자. 아키바.”

그러고는 치후유와 함께 자리를 뜨는 바지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유이는 미츠야를 올려다보았다. 마찬가지로 그는 그들의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낯으로 가만히 케이스케의 발자취를 바라보는 미츠야는 상당히 심란해 보였다. 어떤 마음인지 짐작조차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얼굴을 한 미츠야에 유이는 아무런 말도 건네지 않고 그저 조용히 그의 손을 잡았다. 요즘 도쿄 만지회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어느 정도 들은 게 있었기에 말을 얹는 게 쉽지 않았다. 어쩐지, 생각이 많은 저녁이었다.

핫카이

시바 핫카이는 상당히 곤란한 상황을 겪고 있었다. 저녁 시간 전 붕 떠버린 시간을 때우기 위해 집 근처 길목에서 서성거리고 있을 무렵, 익숙한 얼굴을 발견해 반가운 마음에 이름을 불러버린 것이 화근이었다. 어릴 때부터 봐온 미츠야는 불편할 것도, 함께 있을 때 문제가 될 것도 없었지만 그 옆에 있던 사람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게 가장 문제였다. 그는 정말 견딜 수 없는 난관에 봉착해있었다. 하필이면 미츠야를 부른 시점, 그는 여자친구인 유이와 산책을 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그를 불렀을 때 옆에 있던 그녀를 소개시켜준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핫카이 너한테도 한번 소개하고 싶었는데, 잘됐다. 인사해. 이쪽은 내 여자친구인 유이야.”
“안녕하세요, 미츠야의 동생 같은 분이라고…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아키바 유이인데, 아키바보다는 편하게 유이라고 불러주세요.”

해맑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유이에 어떤 대꾸도 못 하고 굳어버린 핫카이가 허공을 응시했다. 어쩌지.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생각은 그거 하나뿐이었다. 애초에 미츠야가 여자친구를 사귈 거라고는 예상 못했는데 거기에다가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될 줄이야. 마음의 준비를 한 채로 소개받았어도 멀쩡한 대화를 나누기 어려웠을 테지만 마음의 준비도 없는 상태에서 말을 섞으려니 그저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며 몸 역시 딱딱하게 굳을 뿐이었다. 무시를 하려는 게 아니었는데, 본의 아니게 무시를 한 것처럼 되어버리자 핫카이가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으로 미츠야를 바라보았다. 그 의미를 알아차린 건지, 유이가 의아한 눈빛으로 핫카이를 올려다보자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설명했다.

“아. 핫카이는 여자만 보면 굳어버려서… 무시하는 게 아니라, 말을 못 섞어.”

그 말에 유이는 굳어져 있는 핫카이의 얼굴을 한 번, 웃고 있는 미츠야의 얼굴을 한 번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성을 보면 굳어지는 친구들은 성별 불문하고 존재했기 때문에 어떤 느낌인 건지 알았다. 물론 이렇게까지 심각한 경우는 처음이지만… 친구 중에서 이성과 말을 제대로 못 섞는 경우를 생각하니 이해가 되기도 했다. 심지어 동급생도 아니고 가족 같은 사람의 여자친구니까, 핫카이가 극도로 굳어버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 부분에서는 그녀가 얼마나 노력하고 다가가는지에 대해서는 상관없이 순전히 핫카이의 일이었다.

“아, 그런 거였구나…. 그러면 내가 있으면 아예 대화하기 어려우려나?”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그냥 직접 대화하는 게 조금 어렵다고 해야 하나. 이성이 아니면 잘 이야기해. 그냥 이성이 말을 걸면 그 말에 반응을 좀, 아니, 좀 많이 딱딱하게 하지.”

뭐라고 이야기하려는 듯이 입을 연 핫카이가 눈을 질끈 감더니 다시 입을 다물었다. 차마 아니라고 반박할 수 없을 정도로 정확한 사실이었기 때문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이성과의 대화란 너무나도 버거운 행위였다. 그렇기에 제대로 된 대답은 하나도 못 하고 굳어버리는 건 이성이 아닌 본능이 시키는 일이었다. 본능적으로 몸의 모든 감각이 예민해져서 뻣뻣해지고 굳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미츠야의 여자친구 앞에서마저 굳어버리다니. 가족처럼 소중한 사람인 만큼 이렇게 중요한 사람을 소개받는 자리에서는 자연스럽게 굴고 싶은데 좀처럼 마음대로 되지를 않는다. 그는 여전히 미츠야를 바라본 상태에서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렸다.

“타카 쨩, 나도…… 잘 부탁드린다고 좀 전해줘. 그리고 편하게 말해도 좋다고도 전해주고, 나도 시바 말고 핫카이로 불러도 좋다는 말도 전해줘.”

그래도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을 택한 건지, 눈을 질끈 감고 미츠야에게 말하는 핫카이의 모습에 유이가 작게 웃었다. 다 들리는데, 전해달라고 하는 것부터 그래도 할 말은 전부 꿋꿋이 하는 것까지. 미츠야가 가족처럼 아끼는 사람이라서 그런 걸까. 기분이 나쁘다기보다는 그저 재밌었다. 이렇게 재밌어하면 실례인 게 아닐까 싶어질 정도로 웃긴 광경이어서, 유이는 애써 웃음을 삼키고는 입을 열었다. 하지만 목소리에 웃음기가 묻어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응, 편하게 부를게. 미츠야랑 가족 같은 사이면… 나한테도 중요한 사람이니까! 앞으로 자주 볼 것 같기도 하고. 친하게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침묵이었다. 직접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그저 꼿꼿하게 굳은 채로 서 있는 핫카이의 모습이, 그 짧은 사이에 익숙해지기라도 한 건지 유이는 어깨를 으쓱였다. 대충 긍정의 대답을 했다고 생각하니 크게 신경이 쓰이는 것도 아니었다. 부정의 대답을 하고 싶은 거라면 조금 슬프겠지만… 지금 당장 핫카이의 마음을 알 수 있는 방도가 없으니 그녀는 제멋대로 긍정이 아닐까 추측했다. 그리고 그 추측은 어느 정도 들어맞았던 건지, 옆에서 가만히 보고 있던 미츠야가 살짝 몸을 숙이더니 유이에게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속삭였다. 좋다는 의미야. 말을 안 하니까 나도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서 있는 분위기를 봤을 때 핫카이도 친해지고 싶어 하는 것 같아. 그 말에 유이가 입을 가리고 쿡쿡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렇다면 나야 영광이지. 나도 핫카이랑 친해지고 싶으니까…. 내가 모르는 미츠야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싶고! 물론 지금 당장은 어려울 수 있겠지만 그래도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친해지려고 노력하면 익숙해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급하지 않아도 좋아. 천천히 친해지자.”

핫카이는 그 말에 동의하고 싶었지만 차마 고개가 움직이지 않아서 동의한다는 의미로 미츠야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타카쨩, 유이 씨한테 잘해줘, 라는 마음을 담아 그에게 눈빛을 보냈다. 물론 핫카이가 아는 미츠야라면 잘해줄 게 뻔하지만 그래도 감명을 받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사람은 비슷한 사람을 만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여자를 불편해해서 말도 제대로 못 받아주는 자신이 답답하거나 기분 나쁠 만도 한데 괜찮다며 천천히 친해지자고 이야기하는 유이의 모습에 어느 정도 안심이 됐다. 적어도 미츠야와 유이가 한쪽에만 치우진 연애를 하지는 않겠구나. 가족 같고 형 같은 그가 유이와 함께하면 행복하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기도 했다. 아직은 섣부른 생각일지도 모르고, 그는 짧은 시간 동안 정말 짧게 그녀와 대화 같지 않은 대화를 나눠본 게 전부지만 그 짧은 시간 내에도 작은 배려들을 받았기에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머릿속으로는 미츠야와 유이의 결혼식을 그리며, 핫카이는 저녁을 먹으러 들어가기 전까지 미츠야와 유이와 대화를 나누었다. 물론 거의 미츠야와 핫카이, 미츠야와 유이, 간혹가다가 유이가 일방적으로 핫카이에게 말을 건 게 전부긴 했지만 그래도 내적 친밀감을 쌓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어서, 그는 연락처 교환까지 끝내고 둘과 헤어졌다. 역시 사람은 비슷한 사람을 만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인사.pdf
0.14MB

'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춘찬미  (0) 2024.03.04
夜愛  (0) 2023.12.10
겨울 앞에  (0) 2023.09.12
낭만 실종 사건  (0) 2023.09.03
길, 우주, 가로등  (0) 2023.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