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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夜愛

by mitsuyui 2023. 12. 10.

ⓒ 뫄님

“절대로 안 돼.”
    
미츠야는 그 어느 때보다도 단호한 표정을 짓고 유이를 바라보았다. 초롱초롱하게 눈을 뜨며 기대에 부푼 얼굴로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에 단호한 거절을 내뱉은 혀가 까끌까끌했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었기에 철회할 수는 없었다. 세상의 별을 전부 따달라고 하면 차라리 나았으리라. 적어도 별을 따기 위한 노력이라도 할 수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유이는 별을 따달라는 것보다 더 어려운 부탁을 하고 있었다. 적어도 미츠야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다른 것도 아니고, 집에서 자고 가고 싶다니. 아무리 사귀는 사이라고 해도 남자의 집에서 잔다는 것에 대한 어떠한 위기감도 없는 것 같아서 조금 걱정되기도 했다. 아니, 사귀는 사이니까 더 조심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러나 유이는 그런 미츠야의 마음을 모르는 건지, 부모님께 온 문자 메시지를 보여주며 차마 거절할 수 없는 눈으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진짜 안 돼? 우리 부모님은 허락하셨는데! 이거 봐, ‘미츠야 군이라면 안심이지, 잘 놀다가 들어오렴!’이라고 하셨잖아.”
“하지만…….”
    
그는 말꼬리를 흐리며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시선을 옮겼다. 커피를 마시며 그들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그의 어머니가 그 눈빛을 보고 옅게 미소를 지었다. 아들이 곤란해 하고 있는 모습이 색다르기도 하고, 여러모로 재밌기도 해서 지켜만 보고 있었는데, 슬슬 상황을 정리할 때가 된 것 같아서 커피잔을 내려놓고는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왜, 엄마는 좋은데. 부모님께 허락받았으면 자고 가도 돼.”
“엄마?”
“타카시, 여자친구랑 파자마 파티라니, 낭만적이고 좋은데 뭐. 난 완전 환영이야.”
    
능청스럽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리는 모습에 당황한 그가 잠시 눈을 깜빡이다가 집 안을 둘러봤다. 루나, 마나, 유이, 그리고 믿었던 그의 모친까지. 미츠야를 제외한 모두가 같은 의견이었다. 어쩐지 말려버린 것만 같아서 잠시 이마를 짚은 그가 갈등하더니, 결국에는 순순히 패배를 인정하고 두 손을 들었다. 좋아, 알겠어. 부모님께 허락도 맡았고, 엄마도 된다고 했고, 루나랑 마나는… 애초에 루나랑 마나가 자고 가라고 한 거니까 불만 없을 테고. 어차피 루나랑 마나랑 자면 되니까. 그 말에 유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한다. 미츠야랑 자면 안 돼? 하지만 자고 가는 것까지는 괜찮아도, 같이 자는 건 죽어도 허락할 수 없었다. 그는 절대로 안 된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안 돼.”
    
그 말에 유이는 조금 아쉬운 듯 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츠야가 많이 양보했으니까, 뭐라고 밀어붙일 수가 없었다. 결국 집에서 자고 가되, 잠은 루나랑 마나랑 같이 자기로 합의를 보는 게 최선이었다. 유이는 혹시 몰라 구비해뒀다는 잠옷을 받아서 갈아입은 후, 미츠야와 함께 루나와 마나의 잘 준비를 도왔다. 네 명이 함께 나란히 화장실에 들어가 이를 닦는 모습은 낯설면서도 한편으로는 제법 웃긴 광경이었다. 어쩐지 가족이 된 것만 같기도 했고, 나중에는 이게 일상이 되겠지 싶은 생각도 들어서 유이는 괜스레 빨개지는 얼굴에 손부채질을 했다. 루나가 보고 ‘언니, 얼굴 엄청 빨개.’라고 할 정도로 붉어진 얼굴은 잘 준비를 하기 위해 이불을 깔고 누울 때까지 식지 않았다.
    
새하얀 이불에 푹 들어가니 별거 아닌 일인데도 웃음이 나왔다. 이불의 시원하면서도 포근한 느낌 때문인지, 아니면 품으로 꾸물꾸물 안겨 오는 루나랑 마나 때문인지. 마음 한구석을 온기로 가득 채우는 기분이었다. 귀여워. 유이는 꼬옥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아이들을 양팔로 안았다. 아이들 특유의 따끈한 체온이 얇은 잠옷 너머로 온기를 전한다. 더운 걸 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이 체온은 아무리 뜨거워도 계속해서 안고 싶어질 정도로 사랑스러웠다. 유이는 루나랑 마나를 꽉 끌어안은 채로 불을 끄기 전 인사를 하러 커튼을 연 미츠야를 향해 시선을 굴렸다. 그가 미소를 지으며 옹기종기 모인 그들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유이, 잘 자. 루나랑 마나도, 잘 자. 좋은 꿈 꾸고.”
“미츠야도 잘 자. 좋은 꿈 꿔!”
    
오빠 잘 자아, 졸음 가득한 눈으로 인사하는 루나와 마나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방을 채우던 빛이 뚝 끊겼다. 빛에 익숙하던 유이의 눈동자가 한순간에 찾아온 어둠에 한참을 허공을 더듬다가 이내 몰려오는 졸음에 따스한 이불과 아이들의 온기 속에서 천천히 눈을 감으며, 유이는 순식간에 규칙적인 숨소리를 내뱉으며 잠에 빠졌다.
    
유이가 잠에서 깨어난 것은 모두가 자고 있을 새벽의 한가운데 무렵이었다. 평소에는 웬만하면 잠에서 깨지 않는 유이였지만, 평소에 자던 익숙한 공간이 아니라 낯설기도 했고 어쩐지 옆을 가득 채우고 있던 온기가 사라져있기도 해서 저도 모르게 눈을 떠버렸다. 그녀는 꼭 안겨있던 루나와 마나를 찾기 위해 감겨오는 눈을 떠서 주변을 둘러봤지만, 아이들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화장실이나 거실에 있을까 싶어서 밖에 나가보기까지 했지만 루나와 마나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덜컥 겁이 난 유이가 미츠야를 깨워 루나와 마나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커튼을 열었다. 다르륵, 쇠와 쇠가 맞닿는 소리가 불길하게 느껴졌다.
    
“미츠…! 야…?”
    
하지만 걱정하며 커튼을 친 게 무색하게도, 그토록 찾던 루나랑 마나는 둘이 꼭 붙은 채로 미츠야의 이불에 누워서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숨소리가 아이들이 얼마나 깊은 잠에 빠졌는지 대변하고 있기라도 한 듯 안정적이기 짝이 없었다. 유이는 불안으로 거세게 쿵쾅거리던 심장 소리를 가만히 들으며 커튼을 쥔 채로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당황한 나머지 손바닥이 축축했고, 여전히 심장이 빠르게 뛰어서 귓가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지만 그래도 루나와 마나에게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정말 아무 일도 없어서 다행이다. 혹여라도 무슨 일이 생겼다면, 그래서 루나와 마나가 다치기라도 했다면 정말 큰 공포로 남았을 것이다. 요즘은 워낙 세상이 흉흉하니까. 유이는 규칙적인 숨소리를 내뱉으며 서로의 손을 꼭 붙잡고 엉겨 붙은 채로 자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겨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유이는 깜짝 놀라서 기절할 뻔했는데, 이렇게 태연히 자고 있는 모습을 보니까 어쩐지 얄밉기도 했다. 하여간, 사람 놀라게 하는 거에는 재능이 있다니까. 물론 꾸물꾸물 미츠야의 이불로 갔을 걸 생각하니 귀엽게 느껴졌지만. 유이는 소리를 죽여 웃었다. 그래도 자신만 아는 작은 헤프닝으로 끝났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그녀는 꼭 닮은 세 남매를 관찰하기라도 하는 듯이 훑었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어렴풋이 보이는 그들의 모습을 담았다. 유이는 자기 전 미츠야의 책상 위에 올려둔 전화기를 잡고 그대로 카메라를 켰다. 이건 사진으로 남겨둬야 해. 이유는 단순했다. 꼭 붙어서 자고 있는 미츠야와 루나, 마나가 귀여웠으니까. 묘하게 닮았으면서도 다른 얼굴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은 귀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그 조합이 아이들과 남자친구라면 더더욱. 찰칵. 사람이 깨지 않을 정도의 작은 셔터음이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유이는 찍힌 사진을 확인하고는 전화기를 다시 책상 위에 올려뒀다. 방 안이 어두운 탓인지, 사진은 선명하지 않았지만 많은 것이 담겨있었다. 새벽만의 공기라거나, 창문 틈 사이로 슬금슬금 기어들어 오는 달빛, 차분한 어둠과 아이들의 따뜻한 체온, 그리고 규칙적인 숨소리까지. 적어도 그것들을 온몸으로 느낀 유이는 선명하지 않은 사진 속에서 수많은 것을 담을 수 있었다. 사진은 결국 찍은 사람이 담는 것이기에, 유이는 자신이 찍은 사진에 이 공간의 모든 것을 담았다.
    
“나 혼자 자기는 싫은데. 나만 빼고, 치사해.”
    
입을 약간 삐죽이며 쭈그려 앉아 깊은 잠에 빠진 미츠야의 볼을 콕콕 찌르던 유이가 아무도 볼 수 없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고는 주섬주섬 미츠야 옆에 누웠다. 물론 미츠야가 내일 보면 엄청 놀라겠지만, 나만 빼는 건 치사한 거 맞잖아? 그러니까 어쩔 수 없었어. 속으로 변명 비스무리한 말을 몇 번 중얼거린 유이가 꾸물꾸물 미츠야에게 붙었다. 언제나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던 그들이었지만, 시간 탓인지 아니면 장소 탓인지 묘하게 쑥스러우면서도 심장이 거세게 쿵쾅거렸다. 아까 전, 루나와 마나가 사라진 것을 알았을 때와는 사뭇 다른 박동이었다.
    
미츠야, 새삼 잘생겼네. 자고 있는 그의 모습이라 그런지 감회가 새로웠다. 유이는 그의 얼굴을 천천히 훑었다. 항상 잘생겼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렇게 이목구비 하나하나를 자세히 살피니 어쩐지 더 크게 다가왔다. 그러다가도 이렇게 자는 사이에 보는 게 부끄러워서, 유이는 괜히 자는 것에 집중하기 위해 몸을 돌려 정자세로 누웠다. 자야지, 자야지! 머릿속에 계속해서 떠오르는 미츠야의 얼굴을 지워내며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고 있을 무렵, 미츠야가 뒤척거리기라도 하는 건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애써 그 소리도 무시하며 유이는 가만히 눈을 감았지만, 그런 유이를 비웃기라도 하는 건 지 한참 바스락거리던 그가 그녀를 껴안았다.
    
“빨리 자자…,”
    
루나나 마나로 착각하기라도 한 건지, 잠버릇처럼 중얼거리며 손으로 몇 번 유이를 토닥거리던 미츠야가 이내 다시 움직임을 멈춘다.
    
“무, 무슨……!”
    
깊은 잠에 빠져서 요지부동인 채로 자고 있는 미츠야는 유이가 반사적으로 내뱉은 말도 듣지 못했고, 결국 잔뜩 당황한 것은 난데없이 토닥거림을 받은 유이였다. 차마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너무나도 가까운 그의 얼굴에 긴장한 그녀가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렸다. 바보, 미츠야! 나야 좋지만, 그치만…! 너무 가까워! 하지만 좋아! 속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던 유이는 결국 정자세로 누워있던 몸을 돌려 미츠야 쪽을 바라보았다. 조금만 움직이면 닿을 것처럼 가까워진 거리감에 숨 쉬는 것마저 조심스러웠지만 한참 자던 도중 깨어난 탓인지, 전혀 자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유이는 금세 잠에 빠졌다.
    
다음 날, 반사적으로 일찍 눈을 뜬 미츠야가 마주한 것은 새근새근 숨을 내뱉으며 자고 있는 유이였다.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고 가만히 눈을 깜빡이던 미츠야의 머릿속에 무언가 스쳐 지나갔다. 어제, 분명 루나를 토닥여줬던 기억은 나는데… 왜 여기에 유이가 있지? 설마 루나가 아니라. 거기까지 생각이 이어지자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유이. 유이? 도대체 무슨 일이야……. 유이?”
“으응, 더 잘 거야…….”
“도대체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거야….”
    
당황스러운 마음에 유이를 깨우려고 슬금슬금 떼어내려고 해보지만, 칭얼거리며 떼어낸 거리 이상으로 붙어오는 유이에 미츠야는 당황하다가 결국 바람 빠진 웃음소리를 내뱉었다. 도대체 언제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진짜 말 안 들어. 그래도 꼭 안겨 오는 그 모습이 싫지는 않아서,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너무나도 사랑스러워서 미츠야는 그녀를 마주 안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달콤한 시간을 어떻게 거부한단 말인가. 결국 미츠야는 작게 소리내어 웃으며 유이에게 온기를 전했다.

(4008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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