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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讚美

by mitsuyui 2024. 3. 30.

ⓒ 뫄님

새카만 밤을 푸른 전파가 가득 채웠다. 휴대전화기 너머로 낮은 목소리가 유이의 이름을 몇 번 읊조리듯이 부르더니, 이내 작게 웃음을 지으며 새근거리는 숨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잘자, 유이. 생일 축하해. 시간은 자정, 3월 29일의 시작을 알리는 미츠야의 목소리와 함께 유이는 잠 속으로 말려들어 갔다.
    
    
    

生의 讚美

    
    
전날 맞춰둔 알람 시계 소리가 울리기도 전에 눈을 뜬 유이가 잠시 이불 속에서 눈을 깜빡거리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해가 뜨고 있는 건지, 얇은 커튼 너머에서 주홍색 빛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잠시 누워서 더 잘지, 아니면 일어나서 학교 갈 준비를 할지 갈등하던 유이가 머리맡을 더듬어 휴대전화기를 잡았다. 충전기에 연결해둬서 방전되지는 않았지만, 전화하다가 잠들어서 그런지 폴더로 된 전화기가 펼쳐져 있었다. 푸른빛이 눈을 콕콕 찌르는 바람에 눈을 살짝 찌푸린 그녀가 시간을 확인했다. 평소보다 삼십 분이나 일찍 일어났지만 어쩐지 더 자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몸을 일으킨 유이가 괜히 스트레칭을 하며 뻐근한 몸을 쭉쭉 풀어주었다. 간밤에 어떤 꿈을 꿨던 것 같기도 하고.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기분이 좋은 꿈이었다는 사실은 확실하게 기억이 나서, 유이는 하루의 시작이 좋다고 생각하며 화장실로 향했다. 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화장실로 들어가니 거울에는 졸음이 잔뜩 묻어있는 멍한 얼굴이 유이를 응시하고 있었다.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 어쩐지 웃기게 생겼다. 그녀는 터지려는 웃음을 참았지만, 그 대신 입꼬리가 이상하게 씰룩이는 바람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표정이 되었다. 결국 거울에 비친 자신의 이상한 표정을 보고 참고 있던 웃음이 새어 나온 건 어쩔 수 없었다.
    
세수를 하고 다시 슬리퍼를 질질 끌며 거실로 내려가자 짭조름한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 냄새의 정체를 물어볼 것도 없이, 항상 생일 아침을 장식하는 건 미역국이었기에 유이는 입맛을 다시며 식탁 앞으로 가서 앉았다. 꽤 이른 시간에 내려온 유이에 부엌에서 분주하던 움직임이 멈추더니, 이내 일찍 일어났네? 라며 다정한 물음이 짭조름한 미역국 냄새를 따라 거실에 퍼졌다. 유이는 눈이 일찍 떠졌다며 대꾸하면서도 어쩐지 생일이라 잔뜩 들뜬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 들어서 쑥스러운 마음에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하기야, 엄마 눈에 나는 언제나 어린아이겠지. 그렇지만 생일이 기대돼서 잠도 못 잘 정도로 신난 애처럼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어쨌든 유이는 더 이상 마냥 어린 나이가 아니었으니까. 십 대에게는 정말 중요한 사안이었기에 그녀는 어떻게든 들뜬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지만 발그레 달아오른 얼굴은 유이가 신나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나타내고 있었다.
    
푸짐한 한 상이 차려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아침이라 부담스러운 메뉴는 아니었지만, 유이의 생일이라는 것을 의식한 탓에 이것저것 평소 아침 식탁에는 보기 힘든 반찬들이 올라와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준비한 게 티가 나는 상차림에 유이가 활짝 웃으며 외쳤다. 잘 먹겠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국을 떠서 한 술 맛보고는, 일부러 조금 더 큰 동작으로 엄지를 치켜든 그녀가 잔뜩 신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너무너무 맛있어. 진짜로! 그 말에 웃음기 어린 대꾸가 돌아왔다. 입에 맞다니 다행이네. 생일 축하해, 유이. 한 번 물꼬가 트이니 꼬리를 물고 축하의 말이 줄줄이 따라왔다. 평소에는 할 일이 없는 낯간지러운 말들이지만, 그래도 생일을 빌미로 가족들한테 행복하라는 등의 말을 듣게 되니 기쁜 건 어쩔 수 없었다. 평소에는 장난을 치면 장난을 쳤지, 큰일이 없는데 뜬금없이 행복하라는 말을 하면 다들 당황했으니까. 유이는 괜히 뒷목을 마구 쓸어내리며 쑥스러운 마음을 숨겼다.
    
식사를 끝내고 보니 어느덧 학교 갈 준비를 해야만 하는 시간이라서, 그녀는 깨끗하게 빈 식기를 싱크대에 내려놓고는 씻기 위해 다시 화장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원래는 봄방학이 있을 시기인데, 학교 보수 공사 때문에 방학이 길어지는 바람에 새 학기가 시작하는 바로 전 주인 오늘까지도 학교를 나가야 했다. 분명 어렸을 때 이런 일이 있었더라면 생일날 학교에 간다는 사실이 상당히 울적했겠지만, 어느 정도 커보니까 생일에 학교 가는 건 꽤 좋은 일이었다. 친구들한테 축하를 받을 수도 있고, 무엇보다 학교에는 미츠야가 있으니까 미츠야에게도 직접 축하를 받을 수 있었다. 물론 학교에 안 갔다고 해도 그는 직접 축하해주러 왔겠지만. 자정에 가장 먼저 축하해주고 싶다며 생일 전날부터 전화를 건 그를 생각하니 괜히 웃음이 나왔다. 물론 축하를 듣지 못하고 잠에 들어버렸지만. 아마도 미츠야는 자정이 됐을 때 축하해줬을 것이다. 그리고 아침에 만나서 같이 등교하기로 했으니까. 아, 미츠야 생각하니까 미츠야 보고 싶어! 서둘러 양치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책가방을 챙기고는, 학교에 갈 준비를 전부 마친 그녀가 준비하는 동안 여러 번 울린 휴대전화기를 손에 쥐고 현관문을 열었다.
    
현관문을 열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대문 앞에 서 있던 미츠야가 유이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설핏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드는 미츠야에 괜히 반가워서 유이가 그의 이름을 외쳤다. 미츠야! 그 말에 화답하듯 달려 나오는 유이에게로 팔을 벌린 그가 대꾸했다. 응, 유이. 좋은 아침이야.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해져 버린 아침 인사지만, 어쩐지 오늘은 조금 새로운 기분이 들었다. 특별한 날이라서 그런가, 티를 내지 않으려고 해봐도 자꾸만 티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기분이 자꾸만 들떠버려서, 마구 주체할 수 없어지고야 만다. 유이는 미츠야를 한번 꼭 끌어안고는 떨어져 가방끈을 꽉 쥐었다.
    
“생일 축하해, 유이. 어제 자정에도 이야기했는데 혹시 들었으려나?”
    
그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깜빡거리던 유이가 고개를 저었다. 예상하기는 했지만, 역시 생일 축하한다고 말하고 끊었구나. 문뜩 듣지 못하고 잔 게 아쉬워서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며 미츠야를 바라보고 있자니 그가 눈치챈 건지, 유이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 못 들은 것까지 많이 이야기해줄게. 어때?”
“좋아!”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는 유이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미츠야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몰래 웃었다. 이제는 척하면 척.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아내는 건 일도 아니다. 그만큼 서로에 대해서 잘 알게 되었다는 거겠지. 미츠야가 유이의 눈만 봐도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바로 알아차리는 것처럼, 유이도 그의 눈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쉽게 알아차렸으니까. 하기야, 오래 본 것도 오래 본 거지만 매일 만나서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는데 서로에 대해서 모르는 게 더 이상하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면서 걷다 보니까 학교에 도착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조회가 있는 탓에 각자의 반으로 헤어져야만 해서, 유이는 미츠야를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고는 반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친한 친구들이 유이를 부르며 손짓했다. 유이는 자리에 가방을 대충 걸어두고는 친구들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친구들의 얼굴은 당장이라도 웃음을 터트릴 것처럼 입꼬리가 이상하게 씰룩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유이가 가까이 다가가자, 여러 크기의 선물상자를 한꺼번에 내밀고는 외쳤다.
    
“유이, 생일 축하해!”
    
가까운 친구들의 축하에 잔뜩 웃으며 고맙다고 인사할 무렵, 반 친구들이 그 소리를 듣고는 하나씩 축하의 말을 건넸다. 어, 오늘 유이 생일이야? 생일 축하해! 유이 생일이라고? 오늘 맛있는 거 많이 먹어! 좋은 하루 보내! 뭐 그런 말의 껍데기를 쓴 다정함이 한가득 유이를 향했다. 순식간에 보다 더 행복해진 유이가 친구들이 안겨준 선물을 들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학교 친구들한테 축하받는 게 학기 중 생일자의 특권이다. 삼월 말 출생인 그녀에게는 단 한 번뿐인 특권이지만. 이번처럼 학사일정이 특이하게 밀려버린 경우가 아니라면, 보통 유이의 생일은 봄방학이 점점 끝나갈 무렵이니까. 학기 중은 무슨, 새로운 학기를 준비하느라 바빠 죽을 시기였다.
    
그런 이유로, 친한 친구들에게도, 같은 반 친구들에게도, 오며 가며 아는 친구들에게도 축하를 받아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아, 부럽다, 나도 학기 중에 생일이 있었으면 생일마다 많은 친구들한테 직접 축하를 받았을 텐데. 물론 전화나 문자로 축하해주는 게 싫은 건 아니지만, 전화기 너머의 말보다는 직접 전달되는 말이 조금 더 좋은 건 어쩔 수 없었다. 얼굴도 볼 수 있고. 하지만 학사일정이 이렇게 극적으로 바뀌는 경우는 흔한 게 아니어서, 누리고 싶다면 이번 기회에 잔뜩 누려야 했다. 너무 많은 주목을 받는 건 조금 부끄러웠지만, 그게 전부 좋은 의미라고 생각하니 그마저도 기꺼웠다.
    
모든 축하가 고맙고, 기뻤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축하는 하루키와 료헤이의 축하였다. 물론 그들과는 제법 친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친구 관계지만, 그래도 하루키와 료헤이의 축하를 받으니 그 둘과 많이 친하다는 것을 증명받은 기분이라 마음이 간질간질거렸다. 물론 잔뜩 감동을 받아서 고맙다는 말만 백 번을 넘게 반복한 유이를 보고 하루키가 ‘왜 그렇게 호들갑이야, 별일도 아닌데!’라고 이야기했지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싫은 기색이 아니라 유이는 그마저도 멋대로 좋게 생각해버리기로 했다. 그녀가 너무 기뻐하니까 당황해버린 하루키, 정도로. 실제로도 옆에서 료헤이가 ‘파칭은 바보라 그렇게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면 당황한다고.’라며 대변해주기도 했고.
    
오늘 하루, 학교생활이 너무 즐거웠던 탓일까? 생각보다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 버려서,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학교가 끝나고 하교할 시간이 되어있었다. 시험도 전부 끝난 탓에 수업 진도 같은 건 나가지 않았고, 거의 수업 일수만 채우기 위한 등교였기에 수업 시간도 단축되어서 한 시 삼십 분 정도에 방과 후 종이 울렸다. 삼삼오오 교문을 빠져나가는 아이들을 따라서 학교 밖으로 나온 미츠야와 유이가 나란히 걸으며 유이의 집 쪽으로 향했다.
    
“오늘 뭔가 시간이 진짜 빨리 가는 것 같아.”
“그러게. 오늘 특별한 날이라서 그런가? 모든 게 빨리빨리 지나가는 것 같네.”
“특별한 날이라니, 완전 영광인데? 으응, 근데 오늘은 진짜 특별하긴 했어.”
    
유이가 잠시 고민하더니 천천히 말을 이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한테 축하를 받은 건 처음이야. 그래서 정말 기뻤어. 그리고, 미츠야한테 축하 받을 수 있어서…… 기뻐. 다른 애들한테는 비밀인데, 나는 미츠야의 축하가 가장 좋았어.”
    
그 말에 미츠야가 웃음을 터트렸다.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말이라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가 유이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쓰다듬으며 영광이야, 같은 말을 내뱉었다. 그러다가, 유이네 집 근처에 있는 공원에 다다르자 발걸음을 천천히 늦추기 시작하더니 그녀에게 넌지시 이야기했다.
    
“유이, 조금만 더 이야기하고 갈래?”
    
가족들과의 약속까지는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았고, 마침 조금 더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유이였기에 그녀는 흔쾌히 그 제안을 수락했다. 좋아. 우리 여기 앉아서 조금 더 놀다가 가자. 미츠야는 공원 벤치를 향해 뛰어가서 가방을 벤치 위에 내려놓는 유이를 한 발자국 뒤에서 따라가며 웃었다. 역시 봐도 봐도 보고 싶어서, 자꾸만 헤어질 무렵에 그녀를 붙잡게 된다. 안 좋은 버릇이지만 볼 수 있을 때 많이 보고 싶은걸. 사람 일은 모르는 거라, 나중으로 미뤄버리면 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미츠야는 괜히 나중으로 미뤄버렸다가 아쉬워하고 싶지 않았다. 봐도 봐도 부족하니까, 볼 수 있을 때 많이 봐야지. 항상 그런 마음이다.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행복해지는 웃음을 잔뜩 지은 유이가 벚나무 아래에서 떨어지는 벚꽃잎을 잡겠다며 이리저리 움직였다. 미츠야는 가만히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발걸음을 움직여 유이가 있는 벤치 쪽으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분홍색 벚꽃잎 사이로 그가 침범했다.
    
“벚꽃잎은 왜 잡으려고?”
“떨어지는 벚꽃잎을 잡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대!”
“유이의 사랑은 벚꽃잎 안 잡아도, 이미 이루어지지 않았어?”
“그래서 나는 사랑이 이미 이루어졌으니까, 오래오래 계속되게 해달라고 하게.”
    
희고도 붉은 벚꽃이 손가락 사이로 나풀나풀 날아다니며 유이의 손을 피해 다녔다. 어쩐지 얄밉기도 하고, 가련하기도 한 그 모습에 미츠야가 조금씩 벚꽃잎들 속으로 들어가서 손을 뻗었다. 순식간에 얇은 벚꽃잎 한 장이 그의 손에 수줍게 앉았고, 미츠야는 그 벚꽃잎이 날아가기라도 할까 봐 반대쪽 손으로 덮어버렸다. 계속해서 제 손을 피하던 벚꽃잎이 미츠야의 손 위에 얌전하게 앉아있는 것을 본 유이가 약간은 허망한 눈빛으로 꽃잎을 바라보았다. 배신을 당하기라도 한 것 같은 얼굴에 작게 웃은 미츠야가 벚꽃잎을 유이의 손에 쥐여주었다. 어차피 유이의 바람이 그의 바람이었다. 그러니까 누가 이 벚꽃잎을 가지든, 결론은 똑같을 것이다.
    
“정말로 사랑이 오래오래 계속되면 좋겠다.”
    
중얼거림처럼 나온 말에 유이의 눈동자가 그를 향했다. 벚꽃잎들이 둘의 머리 위로 우수수 쏟아져 내리는 광경이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 미츠야가 가만히 유이와 눈을 마주치다가 그녀의 손을 잡고 가방이 있는 벤치 쪽으로 이끌었다.
    
“생일 선물, 주려고…….”
    
가방에서 작지도 크지도 않은 박스를 꺼낸 미츠야가 유이를 벤치에 앉히고는 그녀의 무릎 위에 상자를 올려두었다. 하늘색 상자에 남색 리본이 단정하게 묶여있는 것이, 누가 봐도 상자부터가 잔뜩 신경 쓴 티가 나는 선물이었다. 유이는 가만히 그 상자를 내려다보다가 미츠야를 한 번, 상자를 한 번 번갈아서 바라보더니 말간 웃음을 지으며 상자를 조심스럽게 끌어안았다. 아, 행복해. 그녀의 기쁨을 나타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볼이 발갛게 상기되어있었다.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행복할 수 있을까. 평생 영원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이 공원과 벤치, 벚나무와 따뜻한 바람, 사랑하는 미츠야까지……. 이 순간이 영원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리라.
    
“고마워, 미츠야. 진짜 진짜 고마워. 너무 기뻐.”
“생일 축하해, 유이. 열심히 준비하기는 했는데 마음에 들지 모르겠네……. 마음에 들면 좋겠다. 한 번 열어봐.”
    
미츠야의 말에 유이가 선물 상자의 리본을 풀기 위해서 만지작거렸다. 그런데도 어쩐지 예쁘게 묶여있는 리본을 푸는 게 너무나도 아까워서, 잠시 머뭇거리던 유이가 조심스럽게 리본을 풀어냈다. 한 번 잡아당기는 것만으로 남색의 리본이 부드럽게 풀렸다. 상자를 열어보니 그 안에는 깔끔한 디자인의 카디건이 곱게 놓여있었다. 아무리 봐도 시중에 파는 카디건이 아니어서, 잠시 카디건을 바라보던 유이가 고개를 팍 치켜들고는 미츠야에게 물었다.
    
“직접…… 만든 거야?”
“응. 마음에 들어? 슬슬 날이 풀린다고 해도 아직은 쌀쌀하기도 하고…, 여름에도 햇빛이 강하니까 가볍게 걸쳐 입을만한 게 필요할 것 같아서. 그리고 무엇보다, 유이는 나한테 정말 소중한 사람이니까, 꼭 만들어주고 싶었어. … 생일 선물로는 별로이려나?”
    
유이가 조심스럽게 상자를 옆자리에다가 놓고는, 두 팔을 벌려 미츠야를 끌어안았다.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유이는 자신을 생각해주는 미츠야의 마음에 감동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카디건을 준비한 계기도 너무나도 사랑스러웠고, 직접 만들어주자는 생각도 너무 사랑스러웠으며, 상자에 담긴 카디건이 정말 예뻐서 부풀어 오르는 감정들을 차마 주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이게 행복이 아니면 무엇을 행복이라 칭할 수 있을까. 이렇게 순식간에 커져가는 마음들을 도대체 행복이라는 단어가 아니면 무엇이 설명할 수 있냐는 말이다. 유이는 이게 행복이라고 백 퍼센트 확신했다.
    
“진짜 고마워. 너무너무 고마워, 정말로……. 최고의 생일 선물이야! 이렇게 멋진 선물을, 내가 받아도 될까……. 진짜 미츠야, 정말 마음에 쏙 들어!”
    
이렇게 기쁜 날에는 절대 울지 말아야지. 미츠야에게 계속해서 고맙다는 말과 기쁘다는 말을 반복한 유이가 이대로 있다가는 정말로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아서, 일부러 더 환하게 웃었다. 이렇게 행복한 생일을 보낼 수 있다니, 난 정말 행운아야. 그 말에 미츠야가 유이를 꼭 끌어안으며 대답하듯이 중얼거렸다. 글쎄. 네 생일을 축하해줄 수 있는 내가 진짜 행운아 아닐까. 유이한테 줄 수 있어서 나도 기뻐. 좋아해 줘서 다행이다.
    
미츠야에게서 떨어진 유이가 다시 벤치 쪽으로 가서 카디건을 소중하게 안아 들었다. 아까워서 못 입겠는데, 예뻐서 모두한테 자랑하고 싶어! 그 말에 미츠야가 대꾸했다. 자주 입어줘. 유이가 입어주기를 바라서, 유이한테는 어떤 옷이 가장 잘 어울릴지, 어떤 색이 제일 예쁠지 엄청 고민하면서 만들었어. 지금 입어볼래? 직접 보고 싶어, 내가 만든 옷을 입은 너를. 다시 한번 유이를 기쁘게 만드는 말이었다. 그녀는 냉큼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카디건 소매에 팔을 끼웠다.
    
얇고 가벼운데다가 시원한 소재를 사용해서 그런지 약간은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유이는 옷을 자랑하기라도 하듯이 빙글빙글 돌아보았다. 옷이 나비처럼 살랑거리며 가볍게 흔들렸다. 옷에 벚꽃잎이 한두 장 내려앉았다.
    
“있지 미츠야, 내가 본 옷 중에서 제일 예쁘고 마음에 들어.”
“잘 어울려서 다행이다. 딱 내가 생각한 대로야.”
“이게 다 미츠야가 예쁘게 만들어줬기 때문인걸! 잘 어울린다니 다행이야! 미츠야가 너무 잘 만들어줘서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완전 편하고, 부드럽고, 무엇보다 너무너무 예뻐.”
    
미츠야가 유이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면서 웃었다. 꽤 오래전부터, 직접 만든 옷을 유이에게 주고 싶었다. 그가 소중하게 여긴 친구들에게 특공 복을 만들어준 것처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대도 과언이 아닌 유이만을 위한 옷을. 그 생각이 실제가 되어서, 그가 만든 옷을 입고 있는 유이를 보니 마음 한구석에서 무언가 가득 차올랐다. 아마도 이게 행복일 것이다.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이렇게 행복한데, 한 번 허락되기 시작하니까 점점 욕심이 난다. 앞으로도 계속 축하해주고 싶다. 생일 뿐만이 아니라, 유이에게 있는 모든 행복한 일을 축하해줄 수 있는 위치에 서고 싶었다. 내년 생일도, 내후년 생일도, 그 다음 생일까지. 앞으로 남은 평생의 생일을 그가 축하해줄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기쁨도 없을 것이다.
    
“유이, 오늘 최고의 하루 보내. 가족들과 좋은 시간 보내고.”
    
이제 보내주어야 한다는 사실이 아쉬웠지만, 앞으로 남은 시간은 많으니까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보내줄 수 있었다. 조금 더 크면, 어른이 되어서 유이에게 조금 더 많은 걸 해줄 수 있는 나이가 된다면 오늘 선물보다 조금 더 좋은 걸 해주고 싶었다. 그와 동시에, 어른이 된다면 조금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미츠야가 카디건을 입은 유이를 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손을 내밀었다. 맞잡은 손이 따뜻했다.
    
“미츠야 덕분에 이미 오늘 최고의 하루인걸.”
    
진심이 담긴 그 한마디에 미츠야는 기쁘게 웃었다. 유이는 홀린 듯이 그 웃음을 바라보다가 마주 웃으며, 아쉬운 작별을 고하고 집으로 향했다. 미츠야와 오래 있지 못하는 건 아쉬웠지만, 그래도 그와 함께 할 시간은 많았기 때문에 아쉬운 마음을 재우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어쩌면 어른이 된 후부터는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될 테니까.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 일이 년으로 끝날 사이라면 조급할지도 모른다. 유이에게 확신이 부족했다면 조급해했으리라. 하지만 그녀에게는 확신이 있었다. 어른이 되고도, 어쩌면 평생을 함께할 거라고. 그리고 어른이 된 후에는 가족들이 아니라 그와 생일을 보내는 시간이 찾아올 것이다. 벌써 그와 모든 시간을 함께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언젠가 꼭 그런 날이 오리라고, 그녀는 감히 확신할 수 있었다. 유이는 길게 뻗은 길로 발을 내디뎠고, 공원에서 유이의 집은 그리 멀지 않았기에 금세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 딸, 왔어? 생일 축하한다고 몇 번 말했더라?”
“으음, 한 일곱 번 정도 했던 것 같은데…….”
“어머, 일곱 번밖에 안 했어? 오늘 내로 백 번 채울 수 있으려나. 유이, 생일 너무너무 축하해. 태어나줘서 고맙고, 사랑해.”
“이제 여덟 번이네! 나도 사랑해, 엄마. 아빠도!”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갈 준비를 전부 끝낸 가족들이 한 번 더 축하의 말을 던졌다. 약간은 뜬금없고도 이상한 타이밍이었지만, 생일마다 뜬금없이 생일 축하를 하는 건 유이네 집의 규칙이었다. 생일 당사자만을 위한 날이니까, 하루 종일 축하를 받고 기쁠 수 있도록 계속 계속 축하와 사랑이 담긴 말을 해주는 것이다. 유이는 이 규칙이 좋았다. 그리고 이런 규칙이 있는 자신의 집도, 사랑했다. 이런 다정하고 세심한 곳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 재주 따위는 없었다.
    
생일에는 언제나 가족들하고 시간을 보내는 편이라, 아마도 밖에 나가서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생일 선물을 고르다가 예약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게 될 것이다. 이제는 당연하디당연한 생일 루틴이고, 전부 예상이 되었기 때문에 색다른 설렘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가족들과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는 일은 드물어서, 오랜만에 가족 전부가 모여서 놀겠구나 하는 생각에 기뻐지기 마련이었다. 무엇보다, 삼 월 이십구 일은 유이만의 날이었으니까. 가족들이 그녀를 위해서 신경 써주는 것이 싫을 리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했던 것과 별로 다르지 않은 하루였다. 물론 그렇다고 한들 특별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일 년에 한 번 있는 날이니까. 하라주쿠 거리, 시부야 스카이, 특별한 날마다 가는 레스토랑까지. 여느 평범한 날에는 잘 가지 않는 곳을 가고, 체력이 전부 소진된 채로 집에 도착한 가족들은 미리 사둔 케이크를 꺼내고는 함께 생일을 축하했다. 아직 삼 월이라 그런지 꽤 일찍 져버린 해에, 고작 저녁 여덟 시인데도 불구하고 하늘은 어두웠다. 유이는 새카맣고 차가운 공간 속에서 유일하게 타오르는 촛불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잠시 눈을 감았다. 촛불을 불기 전에 소원을 빌어야 했기에.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소원은 많았다. 사랑하는 모두가 행복하게 해달라는 소원부터, 그 사람들과 오래오래 함께 할 수 있게 해달라는 소원까지. 바라는 게 너무나도 많아서 하나의 소원만 빌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유이는 전부 빌어버리기로 결정했다. 정말로 이 소원을 누군가가 듣고 이루어준다면, 그녀의 바람을 전부 들어달라고. 혹시 모른다. 원하는 걸 전부 말해버리면 이 정성에 감복해 하나가 아니라 서너 개 정도를 들어줄 수도 있는 게 아니겠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소원이 간절해서 무엇하나 포기할 수가 없었다. 가족들과 오래 함께하고 싶은 마음도, 미츠야와의 관계가 영원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그리고 그녀가 사랑하는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전부 너무나도 간절했기 때문에. 유이는 눈을 꾹 감고 마지막의 마지막 소원까지 전부 긁어모아 촛불에게 빌었다. 그러고는 눈을 떠서, 아롱아롱 흔들리는 촛불에 바람을 불어넣었다.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온 바람이 촛불을 스치고 지나가더니, 이내 따스한 불빛이 순식간에 종적을 감추었다. 차가운 어둠이 내려앉았다.
    
딸칵. 전등을 켜는 소리가 들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서 환한 불빛이 집 안 구석구석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언제 어두웠냐는 듯이 환해진 집안에 잠시 시야가 하얗게 변했다. 유이는 눈을 찡그리다가 빛에 익숙해지자 눈을 떴다. 그와 동시에, 유이를 찍고 있던 카메라의 빨간색 불빛이 꺼졌다. 유이는 카메라 렌즈를 빤히 바라보다가 케이크로 시선을 돌렸다. 생일의 주인공이 케이크를 잘라야 하기 때문에, 가족 중 그 누구도 빵칼에 손을 대지 않고 유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여간, 숨이 막히게 사랑스러운 집안이었다.
    
치후유에게서 문자가 온 건, 케이크를 잘라서 나눠 먹고 있을 무렵이었다. 이상한 학교 일정이나 최근에 일어난 일, 미츠야에게 선물 받은 카디건을 자랑하는 등의 이야기를 하면서 조금은 엉성하게 잘려진 케이크를 먹고 있는 중에 유이의 휴대전화기가 짧게 진동했다. 휴대전화기를 열자 푸른색 빛이 뿜어져 나오며 새까맣고 딱딱한 글씨가 화면에 한가득 들어찼다. 유이는 천천히 그 글씨를 읽어내렸다. 누나, 지금 누나네 집 앞 공원인데 지금 나올 수 있어? 어제저녁, 미리 아홉 시 정도에 만나기로 약속을 잡아둔 터라 유이는 고민하지 않고 빠르게 자판을 눌러 답장을 보냈다. 응. 지금 나갈게!
    
어제 미리 잡아둔 덕분에 허락도 진작 받았던 터라 짧게 치후유를 만나고 오겠다고 이야기한 유이가 간단한 겉옷을 입고는 현관문을 열었다. 아직 날이 전부 풀리지 않아서 그런지 살짝 쌀쌀한 바람이 그녀의 몸을 가볍게 스치고 지나갔다. 날이 전부 저물어서 그런지 주택가를 밝히고 있는 건 가로등이나 창문에서 새어 나오는 형광등이 전부였고, 밤늦게 퇴근하거나 학원이 끝나 집에 돌아가는 이들 외에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유이는 늦지 않게 돌아오자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빠르게 움직여서 치후유가 있을 공원으로 향했다. 멀지 않은 곳이었기에 오 분도 안 되는 시간 만에 치후유를 만날 수 있었다.
    
“치후유!”
“누나!”
    
벤치에 앉아서 상자를 만지작거리고 있던 치후유가 유이의 목소리에 반가운 얼굴로 벌떡 일어났다. 유이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오는 그의 움직임을 따라서 찬란한 금색 머리카락이 바람에 살짝 흩날렸다. 자주 보는 얼굴이고 불과 며칠 전에도 만났는데도 불구하고 반가운 마음이 몽글몽글 솟아오르는 바람에, 유이는 들뜬 목소리로 그에게 인사했다. 오랜만에 보는 것 같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그 말에 치후유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했다. 맞긴 한데, 그저께도 봤잖아. 그러고는 치후유는 이내 씩 웃으며 들고 있던 상자를 내밀었다.
    
“아, 누나, 생일 축하해! 만나서 직접 말해주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렸던 거 있지.”
    
선물 상자는 꽤 고급스러운 디자인을 하고 있었다. 십 대들이 자주 사용하는 브랜드여서, 유이는 상자 속 내용물을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지갑 브랜드니까 상자 안에 있는 건 지갑이겠지. 생각했던 게 맞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선물을 준 당사자 앞에서 상자를 여는 건 실례라는 생각이 그녀를 막았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무색하게도, 치후유가 유이보다 더 신난 얼굴로 상자를 지금 열어보라고 말하는 바람에 그녀는 작게 미소를 지으며 상자의 뚜껑 부분을 잡았다. 치후유의 종용에 상자를 열어보자, 예상했던 것과 같이 깔끔한 검은색의 지갑이 안에 들어있었다.
    
“와, 치후유, 나 딱 마침 지갑이 다 헤져서 바꿀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진짜, 진짜 너무 마음에 들어!”
“안 그래도, 계속 지갑이 눈에 밟혀서……. 그거 이 년 정도 쓴 거잖아. 용돈 열심히 모아서 샀으니까, 잘 들고 다녀야 해!”
    
열렬하게 고개를 끄덕거리는 유이를 따라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당연히 잘 들고 다녀야지. 아니, 너무 소중해서 들고 다니지도 못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혹시라도 헤져버릴까 봐, 순간적으로 보물 함에 넣어두고 간직하고 싶다는 마음이 마구마구 솟구쳤지만, 유이는 그 마음을 애써 억눌렀다.
    
“진짜 잘 쓸게. 진짜로!”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유이는 애써 꾹 참았다. 가족들도 그렇고, 미츠야도 그렇고, 치후유도……, 도대체 자신이 전생에 무슨 일을 했길래 이런 행복을 누릴 수 있단 말인가. 너무나도 과분한 것들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정말 과분해서, 삶이 행복으로 벅차오른다. 아마 행복해서 지금 당장이라도 울 것 같다는 게 이런 느낌이겠지. 하지만 이렇게 행복한 날을 눈물로 채우고 싶지 않았기에 유이는 또다시 차오르는 눈물을 꾹 참았다. 눈에 힘을 주고 어떻게든 울지 않으려고 애를 쓴 그녀가 우는 대신 말갛게 웃으며 말했다.
    
“행복해…….”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온 목소리가 약간 젖어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어쨌든 지금 당장 중요한 건, 그녀가 지금 당장 날아갈 것처럼 행복하다는 것이었다. 마시고 있는 기체가 산소가 아닌 헬륨이라도 되는 것 마냥, 붕 떠서 우주 저 멀리로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 유이는 자신의 발이 멀쩡하게 땅에 붙어있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안심할 수 있었다. 정말 우주로 날아가 버리면, 생일이 시작이자 마지막 날이 될 테니까. 다행스럽게도 유이는 아주 멀쩡하게 지구에 붙어있었기 때문에 가족과 친구들이 텔레비전에서 그녀의 소식을 확인하게 되는 일은 없었다.
    
잠시 샘솟는 행복을 잔뜩 만끽하고는, 점점 흘러가는 시간에 유이는 치후유와 헤어져 집으로 향했다. 품 안에 상자를 소중하게 안고 있는 채로. 집에 들어가니 씻고 잘 시간이라서, 유이는 잠시 오늘 받은 편지와 선물들을 정리하고는 씻고 나왔다. 이십구 일이 거의 다 끝나가는 중인데도 불구하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축하하겠다는 듯이, 거실로 나올 때마다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툭툭 던지고 지나가는 가족들의 말에 작게 웃음을 짓게 되는 것도 잠시. 슬슬 잘 시간이 다 되어가는 바람에 유이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너무 행복한 하루여서 그런지 괜히 여운이 남아서 잠이 오지 않았기에, 말똥말똥한 눈을 천천히 깜빡이며 새카만 천장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중에 갑작스럽게 울리기 시작한 기다란 진동이 귓가를 간지럽혔다.
    
휴대전화기를 여니 푸른 빛과 함께 미츠야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거의 열두 시가 다 되어갈 무렵에 걸려 온 전화라 잠시 눈을 깜빡거리며 그 화면을 바라보던 유이가 버튼을 눌러 전화를 받았다.
    
“… 여보세요?”
[“여보세요. 아직 안 자고 있었네?”]
    
미츠야가 숨죽인 목소리로 물었다.
    
“으응, 잠이 안 와서……. 근데 이제 곧 잘 것 같아. 미츠야 목소리 들으니까 졸려. 근데 미츠야, 무슨 일 있어? 이 시간에 전화 잘 안 하잖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잠깐 이어진 정적에 유이가 의아한 얼굴로 휴대전화기를 귀에서 떼어낸 다음 화면을 확인했다. 화면에는 여전히 통화가 연결되어있다고 떠 있었다. 유이가 다시 전화기를 귀에 가져다 대고 미츠야의 이름을 부르려던 찰나, 그의 목소리가 전파를 타고 흘러나왔다.
    
[“… 생일 축하해, 유이.”]
    
그러고는 미츠야가 곧바로 말을 이었다.
    
[“첫 축하도, 마지막 축하도 내가 해주고 싶어서. 욕심이지만, 네 모든 순간에 함께 하고 싶으니까.”]
    
시계를 보니 시간은 어느덧 열한 시 오십팔 분. 생일이 끝나기 이 분 전이었다. 유이는 작게 웃으며 미츠야의 말에 대꾸했다. 미츠야, 넌 이미 내 모든 순간에 함께 하고 있는걸. 그도 그럴 것이, 유이는 언제나 그를 떠올렸으니까. 모든 순간에 그를 떠올리고, 모든 일에 그를 생각하는데 모든 순간에 함께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고마워, 미츠야. 덕분에 오늘 정말 최고였어. 내 생일의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해줘서, 고마워.”
[“네 생일의 처음과 마지막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영광이야. 유이.”]
    
째깍거리며 움직이는 초침을 따라서 유이의 눈동자가 굴러갔다. 오십구 분 오십 초. 오십일 초. 오십이 초.
    
[“유이.”]
    
오십삼 초, 오십사 초, 오십오 초, 오십육 초…….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미츠야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마치 동굴 한가운데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어느새 열두 시로 넘어간 시침을 보며, 유이는 가만히 눈을 깜빡였다. 코끝이 찡하니 아릿했고, 눈 쪽에 열기가 몰려왔다. 시야가 뿌옇게 변해서, 유이는 제 눈을 가리는 게 눈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꾹 참고 있던 눈물이 미츠야의 한 마디에 하나둘 흘러나오기 시작한 게 분명했다.
    
“나도.”
    
이 고철 덩어리를 통해서는 전부 전할 수 없는 감정을 가득 머금은 유이가 그 감정을 한 자 한 자 조심스럽게 뱉어내기 시작했다. 혹여라도 제가 보내는 마음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을까, 걱정하며.
    
“나도 사랑해, 타카시.”
    
이게 사랑이 아니면 뭐냐고, 매번 던지던 질문을 또다시 입에 올린다. 이렇게 속을 가득 채우는 감정이, 사랑이 아니라면 무엇으로 정의될 수 있을까. 유이는 이 순간, 빠르게 뛰고 있는 심장 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넘어가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제 심장 소리가 전화기를 통해서 미츠야에게 닿았다면, 미츠야의 귀가 먹먹해졌을지도 모른다. 유이가 사랑이라는 단어가 세상에서 사라져버릴까 두려운 사람처럼 조급한 목소리로 다시 한번 중얼거렸다.
    
“사랑해.”
    
입에서 녹아내리는 짧은 단어가 쓰라릴 정도로 달았다. 유이는 직감했다. 몇 년이 지나도, 몇십 년이 지나도, 오늘을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과 이 순간을 평생 사랑하게 될 것임을.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다. 이미 사랑에 빠져버렸으니까.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깊게, 그리고 짙게. 숨이 막힐 정도의 밀도였다.
    
이게 제 운명이라면 받아들여야지. 유이는 뻔하디뻔한 제 앞길을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결국 이 모든 게 사랑이라면, 뭐가 어떻게 되어도 좋았다. 이미 이 감정을 알아버린 이상 출구는 없었다. 유이는 푸른 빛을 띤 전파를 통해 감히 사랑을 적어 내렸다.

공백포함 16,131/ 공미포 12,004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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