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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Birthday

by mitsuyui 2022. 3. 29.

2005년 3월 29일, 미츠야 타카시는 일생일대의 위기에 처했다.
여자친구인 아키바 유이와의 첫 만남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소란스러웠던 반 배정 후 조용히 쉴 곳을 찾아 헤매다 우연히 마주쳤던 여자애. 흩날리는 벚꽃 아래서 눈이 마주치자 환히 웃어 주었던 그 미소를 잊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남들이 보기엔 누가 봐도 연애였으나 정작 본인들만 모르는 맞짝사랑이 무려 일 년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처음 맞이하는 유이의 생일이니 로맨틱한 데이트, ……여야 했는데.

"서프라이즈? 갑자기?"
"갑자기니까 서프라이즈지."
"타카 쨩, 걱정하지 말고 우리만 믿어!"

집에서는 루나와 마나를 챙기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고, 밖에서는 최근 새로 생긴 폭주족 무리가 도만의 구역을 침범한다고 이에 대한 대처를 세우기 바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유이의 생일 당일까지 완성하지 못한 손수건을 도만 회의까지 챙겨올 수밖에 없었는데…… 들켜도 왜 하필 이 녀석들한테.
인간에게 있어서 생일만큼 특별한 날이 있을까? 게다가 남자친구로서 처음 챙겨 주는 생일인 만큼 오늘은 정말 특별한 하루로 만들어 주고 싶었다. 유이는 더위를 많이 타 여름이면 늘 힘들어했고, 미츠야의 사정 상 비싼 선물을 해 줄 수도 없으니 그는 자신의 특기인 수예를 내세워 직접 유이ゆい의 이름을 새긴 손수건을 선물하고자 했다. 데이트는 오후, 도만 집회는 오전. 그러니 집회를 끝낸 후 오후 전까지 손수건을 완성하고자 했던 것이 어쩌다 이렇게 스케일이 커지고 만 것인진 미츠야도 알지 못했다.

"아니, 당장 몇 시간 후에 만나기로 했는데 취소하면…… 유이, 분명 실망해서 울 거라고."
"그러니까 그만큼 더 감동받지 않겠냐는 거잖냐~ 눈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말이 괜히 있겠냐?"
"바지 씨, 그게 아니라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 임다……."

유이는 감수성이 풍부한 녀석이다. 데이트를 하자고 했을 때만 해도, 연인 사이니 생일에 데이트는 당연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무척 기뻐했었지. 평소에도 웃음이 많아 보는 사람까지 웃음 짓게 만드는 유이는 그만큼 눈물도 많았다.
데이트 코스 중 하나였던 영화를 취소하려면 기회는 지금밖에 없었다. 행복이 보장된 확실한 하루를 보내느냐, 그보다 더한 행복을 거머쥐기 위해 그만큼의 리스크를 감수하느냐. 지금, 미츠야 타카시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아, 정말! 알았어, 알았으니까. 뭐, 어떻게 하면 되는데?"

제 머리를 헝클이며 골머리를 앓던 미츠야가 드디어 답을 내놓자 처음 이 이벤트를 기획한 치후유와 핫카이가 경쾌한 소리를 내며 하이파이브했다. 미츠야 군, 일단 말이죠…….

*

[유이, 갑자기 정말 미안한데.]
[도만 관련해서 급한 일이 생겼거든.]
[오늘 데이트는 어려울 것 같아. 정말 미안.]

메일을 보내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바로 전날에 깨도 실례인 게 약속이라는 건데, 아무리 서프라이즈라고는 한들 당일에, 그것도 당사자의 생일에 깨고 말았다. 이게 맞는 건가……. 유이에게 답이 오는 것을 기다리며 내내 핸드폰 화면만 만지작거리는 미츠야의 어깨 위로 드라켄의 손이 올라왔다.

"뭐, 다 잘 될 거니까. 그나저나 아직 자수 덜 놓지 않았냐?"
"그렇지, 참. 알려줘서 고맙다, 드라켄. ……치후유한테 맡기긴 했는데, 잘 데리고 나올 수 있으련지 모르겠네."
"소꿉친구라며? 한 살 차이긴 하지만. 아, 케이크는 바지랑 마이키가 바이크 타고 사러 갔으니까 시간 맞춰서 올 거다."

몇 번 더 그의 어깨를 토닥인 드라켄은 다른 인원들과 신사의 정리를 하러 곁을 떠났다. 그래, 이미 판은 벌어지고 말았으니까. 난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지. 제 뺨을 손등으로 톡톡 두드린 미츠야가 손수건과 바늘을 꺼내 들었다. 지금은, 치후유를 믿는 수밖에 없다.

미츠야를 제외하면 도만의 일원 중 유이와 가장 인연이 깊은 것은 치후유였다. 한국에서 일본으로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언어도 문화도 낯설어 친구를 사귀지 못하고 있을 때, 놀이터 그네에 앉아 고양이와 놀고 있던 자신에게 먼저 다가와 준 치후유. 비록 나이도 한 살 어리고 중학교도 다른 곳으로 진학하고 말았지만, 이렇게 미츠야와 깊은 인연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치후유, 도만이라는 연결고리가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만큼 치후유도 걱정이 앞섰다. 처음이야 유이 누나를 기쁘게 해 줄 마음으로 들떠서 일을 벌이긴 했는데, 유이 누나는 옛날부터 웃음도 눈물도 많았으니까……. 분명 이불 뒤집어쓰고 울고 있겠지. 아니, 괜히 착잡해져서 죄책감이라도 가졌다간 연기가 들통 나고 만다! 유이 누나를 위해서라도 마음 단단히 먹고 해내야 해. 유이네 집 문 앞에서 다시 한번 결심한 치후유가 조심스레 초인종을 눌렀다.
예고 없이 불쑥 상대의 집에 찾아가도 집에 계시던 부모님이 흔쾌히 문을 열어 주시는 것이 소꿉친구의 특혜. 침을 꿀꺽 삼키고 한 계단 한 계단씩 올라가 유이의 방 앞에 선 치후유는 조용한 헛기침을 몇 번 하고 나서야 방문을 두드릴 수 있었다.

"저어, 유이 누나. 나 치후유인데."
"아, 치후유? 잠시만, 나 지금 꼴이 엉망이라……."
"응, 괜찮아. 문앞에서 기다릴게."

역시 울었구나. 잠시 후,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숙인 채 발을 꼼지락거리던 치후유의 시야에 빛이 들어왔다.
"미안, 기다렸지? 그런데…… 무슨 일이야? 메일도 없이."
"아, 그게…… 엄, 오늘 유이 누나 생일이잖아? 올해는 선물이라도 줄까~ 하고."
"기억해 줬구나? 고마워. ……어라? 아, 사실 오늘…… 미츠야랑 데이트하기로 했었거든. 그런데 도만에 급한 일이 생겼다면서 갑자기 취소된 참인데…… 치후유도 도만 간부 아니야? 집회 가지 않아도 괜찮아?"
"나, 나는 부대장이니까! 오후 회의는 대장들만 아지트에서 따로 모이는 거라 안 가도 돼."

치후유는 자신의 손이 땀으로 범벅됐다는 걸 느꼈다. 하마터면 들킬 뻔했다……! 원래 거짓말에 서툰 편이긴 한데, 들켰을까? 힐끔 눈동자를 굴려 유이를 바라보니 아직도 얼굴이 어두운 게 데이트가 깨진 게 어지간히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라고 해야 할지…….

"어, 어라~…? 분명 주머니에 넣어놨는데 어디 갔지?"
"치후유? 무슨 일이야?"
"유이 누나 선물…… 아무래도 오전 집회 때 신사에 두고 온 것 같아. 같이 갈래? 좋은 날인데, 방에만 있는 것보단 바깥바람이라도 쐬는 게 좋잖아. 마침 오늘 날씨도 엄청 맑은데."
"으응, 같이 나가자."

치후유는 유이보다 한 걸음 앞서 나갔다. 신사로 향하는 길은 치후유가 더 익숙한 것도 있었지만, 자신의 표정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라는 이유가 더 컸다. 물론 유이는 알지 못하겠지만.
신사로 향하는 동안, 치후유는 유이의 기분을 풀어 주기 위해 애썼다. 물론 미츠야의 이야기는 최대한 꺼내지 않으면서. 페케J가 교복에 털을 왕창 묻히는 바람에 지각했다든가, 야자와 아이의 신작 주인공이 꽤 취향이라 마음에 든다든가……. 유이는 애써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혹시 신사에 가면 미츠야를 잠깐이라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어 자꾸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곧 그럴 필요 따윈 없었다는 걸 알게 될 텐데도.

"미…… 츠야?"
"생일 축하해, 유이. 그리고…… 거짓말해서 미안."

신사에 도착한 유이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치후유의 선물이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이게 바로 치후유의 선물일지도 모르지만. 드라켄, 마이키, 바지, 핫카이, 그리고 미츠야. 케이크를 들고 있던 그는 한 손을 주머니에 넣더니 쑥스러운 표정으로 손수건을 내밀었다. 귀여운 갈색 곰과 함께 유이ゆい의 이름이 새겨진 손수건을.

"성은 일부러 안 놓았어. ……전에 그랬지? 미츠야라고 불리는 때, 라고. 성은 그때 놓아 줄게. 미츠야 유이가 될 수 있도록."

언제쯤이면 타카시라고 불러 줄 거야? 꽤 오래 기다리고 있는데.
후후. 좀 더 기다려. 내가 미츠야라고 불리는 때가 오면, 그땐 매일 이름으로 불러 줄게.
그래, 분명 그랬지. 그땐 분명 막연히 지나가는 대화라고 생각했는데, 미츠야는 그것을 기억해 주었다. 게다가 도만에 급한 일이 생겼다며 약속을 취소한다는 메일을 받았을 때 얼마나 속상했던지. 그런데 사실은 전부 자신을 위해 준비한 일이었다고? 그것도 미츠야뿐만 아니라 도만의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니 아까와는 다른 의미의 눈물이 차올랐다. 감동, 기쁨, 놀라움, 그 모든 것이 뒤섞인 감정은 막을 새도 없이 흘러나와 유이의 뺨을 적셨다.

"흑, 속상, 했어……. 내 생일은 신경 써 주지 않는 걸까, 하고……."
"그럴 리가 없잖아. 자, 꺼지기 전에 촛불 불어야지?"

응! 붉게 물든 뺨이 눈물로 젖어감에도 유이는 어느 때보다 밝게 웃었다. 초를 불기 전 빌었던 소원은 당연히 단 한 가지뿐. 앞으로도 미츠야와, 도만의 모두와 오래오래 행복하게 해 주세요. 후우, 불이 꺼지자 그제야 모두의 환호성과 박수 소리가 신사를 가득 채웠다. 그래, 생일이란 무릇 이래야 하는 법이지.

"고마워, 미츠야……. 다른 사람들도 모두."
"응. 다시 한번 생일 축하해. 그리고…… 좋아해, 유이."

분명 여름에 땀을 닦기 위해 선물한 손수건을 벌써부터, 그것도 눈물을 닦으려 쓰게 될 줄은 몰랐지만…… 뭐, 이것도 나쁘지 않나. 입꼬리를 끌어당긴 미츠야의 입술이 깨끗해진 유이의 볼 위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2005년 3월 29일, 아키바 유이는 최고의 생일을 맞이했다.

@뜨거운 허벅지님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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