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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기다림

by mitsuyui 2023. 8. 3.

(뫄님 커미션)

시험은 왜 보고 또 봐도 끝나지 않는 걸까. 유이는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는 가방을 메고는 터덜터덜 힘없는 발걸음을 옮겼다. 불과 며칠 전에 시험이 끝난 것만 같은 기분인데, 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또다시 시험 기간이 도래하고야 말았다. 학기마다 두 번의 시험을 봐야 하는 학생의 입장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종교의 교주가 떠들어대는 지구 멸망의 도래보다 통탄스러운 일이었다. 심지어 아직 제대로 놀지도 못했다는 사실에 억울해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은 채로 순식간에 유이의 하루는 눈코 뜰 새도 없이 바빠지기 시작해서, 매 시험 기간마다 그러하듯 밤늦게 귀가하는 일이 습관처럼 자리를 잡았다. 오늘 역시 너무나도 당연한 시험 기간의 일상 중 하나일 뿐이었다. 다만 평소와 다른 게 있다면, 여느 때와는 다른 미츠야의 부재였다. 유이는 유독 쓸쓸해 보이는 자신의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평소라면 커다란 손이 있었을 공간에는 단 한 줌의 온기조차 없는 채로 텅 비어있었다.

시험 기간이 시작되고, 그녀의 귀가 시간이 늦어지자 미츠야는 함께 공부를 한다는 명목으로 집에 바래다주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시험 기간이라는 최악의 시기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미츠야와 꽤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그의 손을 잡고 집으로 걸어가며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는 건 유이가 좋아하는 시간이 되었고, 하루 종일 몰아치는 문제들을 견딜 수 있게 하는 동력이 되어주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 시간을 누릴 수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미츠야에게 선약이 잡혀있었는데, 그 선약이 다른 무엇도 아닌 도쿄 만지회의 집회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아주 약간의 아쉬움은 있었지만 불만이나 서운하지는 않았다. 다른 것도 아니고, 도쿄 만지회다. 미츠야에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알고 있기도 했고, 대장인 미츠야가 불참할 수 없다는 것을 모를 정도로 어리지도 않았기에 그녀는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었다. 아니, 어느 정도는 도쿄 만지회에 대한 미안함도 있었다. 요 근래 자신과 함께 시간을 보내느라 미츠야가 친구들과 만날 틈도 없었다는 것을 유이는 알고 있었다. 특히 시험 기간이 시작되고 그는 거의 하루 종일 그녀와 붙어있었기에, 그래봤자 유이를 집에 바래다준 후에나 얼굴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괜한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물론 그녀가 왈가왈부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에 책임은 없었지만, 혹시라도 도쿄 만지회 쪽에서 섭섭해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물론 그쪽에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지만, 거기까지는 유이도 알지 못했다.

길가에 빼곡히 서 있는 가로등의 사이를 걸으며 유이가 가방끈을 꾹 쥐었다. 문제집을 너무 많이 넣은 탓인지, 어깨가 뻐근해져 오기 시작했다. 해가 지평선 너머로 사라진 지 얼마 안 된 시각이어서 그런 건지, 거리에는 사람이 많았다. 왁자지껄 수다를 떨며 걸어가는 이들과 세 번 부딪혔을 무렵, 유이의 머릿속에서 지름길로 향하고 싶다는 생각이 고개를 치켜들기 시작했다. 미츠야의 당부도 있고, 치후유가 걱정하기 때문에 큰길로 가고 있지만 솔직한 심정을 말하자면 큰길은 사람이 너무 많았다. 특히 오늘따라 유독 사람이 많아서 거리가 비좁게 느껴질 정도였다. 반면 집으로 가는 지름길은 사람도 별로 없고, 조금 으슥하기는 하지만 그리 위험하지도 않았으며, 무엇보다도 집에 빨리 도착할 수 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자면 조금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깔려있다는 것 외에는 거리낄 것도 없었다. 유이는 다시 한번 가방을 고쳐 메고는 걸음을 옮겼다. 지름길로 가자. 확실히 결정을 내리자 행동은 빨랐다. 유이는 빠른 걸음으로 으스스한 골목을 지나 길의 입구에 도달했다.

미츠야는 한창 집회 중이겠지? 빽빽한 나무 사이에 나 있는 비좁은 길을 걷다 보니 자연스레 미츠야가 생각이 났다. 그와 처음 만났을 때랑 비슷한 상황이었다. 시험 기간에 홀로 지름길을 통해서 집을 가고 있는 상황. 그때는 이 길의 스산함이 싫었지만, 지금은 그때와 정반대의 기분이 들었다. 이 길을 걷다 보면 미츠야가 있는 신사의 입구가 나온다. 그렇게 생각하니 미츠야를 향해서 가는 길처럼 느껴졌다. 한번 그를 생각하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서, 헤어진 지 얼마 안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얼굴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아른거렸다. 항상 곁에 있던 사람의 부재라서 그런지 더욱 거대한 공허함으로 다가왔다. 옆자리가 허전한 것은 오랜만이라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어색함과 묘한 아쉬움이 맴돌았다. 같이 집에 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냥 집회가 끝날 때까지 앞에서 기다렸다가 같이 갈까? 어차피 미츠야도 이번 집회는 오래 안 걸린다고 했고, 가는 길에 신사도 있으니까. 유이는 기계적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마음속으로 미츠야를 보고 싶다는 자신의 마음을 합리화하기 시작했다. 냉정히 생각을 해보자면, 어차피 가는 길이다. 굳이 찾아가는 것도 아니고, 가는 길에 신사가 있어서 같이 집에 가고 싶은 마음에 잠시 기다리는 건 문제가 될 게 없었다. 그러니까 괜찮지 않을까. 심장이 묘한 속도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물론 이쪽 길로 온 거에 대해서 약간의 꾸지람은 듣겠지만, 미츠야는 반겨줄지언정 싫어하진 않을 것이다. 유이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유이는 지체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시원시원하게 앞으로 향하는 발걸음에는 한 줌의 고민조차 묻어있지 않았다. 얼굴만 봐도 좋아. 미츠야가 보고 싶어. 그녀가 스스로를 설득한 이유는 고작 한 가지였다. 그가 보고 싶다는 이유 하나, 오직 그것만이 그녀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신사 입구에는 가로등 불빛으로 인해 번쩍거리는 바이크들이 질서 없이 서 있었다. 안쪽에서는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고, 유이는 입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계단에 앉았다. 메고 있던 가방을 무릎 위로 옮기자 욱신거리던 어깨가 한결 편안해져서, 괜히 무게감이 사라진 어깨를 꾹꾹 눌러보며 남아있는 피로를 덜어내었다. 언제 끝날지에 대한 생각을 천천히 이어가던 중, 문뜩 졸음이 밀려와서 눈이 자꾸만 감기기 시작했다. 노곤한 분위기와 함께 옆에 있는 기둥에 몸을 기댄 그녀가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가 뜨기를 반복했다. 여기서 자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알았지만, 지금 몰려오는 졸음을 견뎌내기에는 오늘 너무나도 바쁜 하루를 보냈다.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문제를 풀었고, 하얗게 빛나는 전등이 눈에 직접적으로 꽂혔다. 몸이 피로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유이는 감기는 눈을 뜨기 위해 몇 번이나 손등을 꼬집었지만 결국에는 온몸을 뒤덮어 버린 피로와 졸음에 승복하고 눈꺼풀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자각하지 못한 사이에 유이는 꿈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규칙적으로 울려대는 풀벌레의 소리와 저 멀리에서 들려오는 까마귀의 울음소리 같은 것은 그녀를 깨우기에는 너무나도 미약했기에, 유이는 한참을 기둥에 몸을 기댄 채로 가방을 껴안고 졸고 있었다.

계단에 앉아 졸고 있는 그녀를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은 도쿄 만지회의 신입 대원이었다. 집회가 끝나고 대장과 부대장을 제외한 대원들은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고,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준비를 마치고 계단으로 내려온 그는 기둥에 기대있는 인영에 오싹한 기분으로 한걸음씩 다가갔다. 무서운 게 아니라, 혹시라도 빈틈을 노린 기습일까 봐 경계하는 거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인영에 가까이 다가간 그는 멀쩡히 살아 숨 쉬는 사람임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겁도 없이 도쿄 만지회의 집회가 열리는 신사에서 잠을 자다니. 그 위명을 들은 이들은 기겁을 할 만한 일이었다. 물론 신사가 도쿄 만지회의 소유인 것은 아니지만 이 근처에 사는 이들이라면, 이 신사를 도쿄 만지회가 아지트처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다른 지역의 사람인가, 싶다가도 교복은 영락없이 이 근처 중학교의 것인지라 그는 유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갈팡질팡한 채로 감을 잡지 못했다. 아무리 불량이라고 해도 궤라는 것이 있다. 일반인을 건드리는 것에 아무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악질이 있었고, 싸움을 좋아한다고 해도 일반인은 건들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신사적인 부류가 있었다. 도쿄 만지회는 후자였고, 그는 그런 도쿄 만지회를 동경했다. 그렇기에 흔한 불량배 만화에 나오는 엑스트라처럼 시비를 건다거나 거칠게 깨우는 것과 같은 행동은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집회가 끝난 후의 신사 앞에는 대원들의 여자친구가 기다리고 있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혹여라도 관계자일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만 했다. 결국 그는 다른 이들이 올 때까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잠에 든 유이의 곁에서 서성거렸다. 그러다가도 뺨에 그늘을 만들어 낸 기다란 속눈썹이라던가, 비단처럼 부드러워 보이는 머리카락을 힐끔 보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물론 처음 본 상대에게 반한다거나, 그런 상황은 아니었다. 단정하고 정석적인 미인이었기에 시선이 끌리는 것뿐, 처음 본 순간 반해버린다는 건 상당히 비상식적이었다. 그렇게 한순간에 미츠야를 비상식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 그는 하나둘 사람들이 계단으로 내려오기 시작하자 화색 하며 이야기했다.

“저, 여기에 사람이 쓰러져있는데….”
“뭐? 사람이 쓰러져있다고?”
“아니, 그게 정확히는 자고 있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혹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건가 싶어서….”

우르르 몰린 이들이 유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검은색의 길게 늘어트린 머리카락, 깔끔하고 청초한 미인, 조금이라도 접점이 있다면 쉽게 잊지는 않을만한 얼굴이었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명확히 떠오르지는 않는 이상 현상은 겪고 있던 그들의 사이에서 잠시 그 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곰곰이 고민하던 한 대원의 얼굴에 깨달음의 빛이 돌았다. 그의 입에서 탄성과 함께 정답이 튀어나왔다.

“아! 알겠다.”
“뭐? 누군데?”
“미츠야 대장 여자친구 아니야? 전에 지나가다가 본 적 있는데, 드디어 알겠네. 미츠야 대장을 기다리고 있다가 깜빡 잠든 게 틀림없어. 말이 되지? 안 그러냐?”

그들의 사이에 호기심이 솟구쳤다. 미츠야 대장의 여자친구? 유이는 도쿄 만지회 내에서 꽤나 유명인사였다. 이유는 단순했다. 미츠야가 좋아하는 사람인 데다가, 그것뿐만이 아니라 그가 거의 빠진 것처럼 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자주 이야기하거나 여느 사람들처럼 자랑을 하는 건 아니었지만 일주일에 한 번은 목격담이 들려왔고, 둘이 이어진 후부터는 부득이한 일이 아니라면 거의 하루 종일 붙어있었다. 그러니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다. 그들은 잠시 침묵하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가장 신사와 가까이에 위치한 이를 동시에 바라보았다. 어떤 의도인지 뻔히 보이는 행동에 그가 한숨을 푹 쉬고는 털레털레 걸음을 옮겨서 한창 대화 중인 미츠야에게로 다가갔다. 그가 간절히 바라는 자리에 우뚝 서 있는 그를 보니 속 깊은 곳에서 동경심이 마구 솟구쳤다. 하지만 지금은 동경심을 표할 때가 아니었다.

“저, 대장! 신사 입구에 사람이 있는데, 미츠야 대장과 아는 사이인 것 같습니다!”
“미츠야, 누구 불렀어?”
“아니. 누가 올 일이 없는데… 아, 설마.”

미츠야는 먼저 가봐야 할 것 같다고 말하며 바로 입구 쪽으로 향했다. 성큼성큼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걸음걸이는 익숙한 뒷모습이 보이기 시작하자 점차 느려지기 시작하더니, 바로 앞까지 가고 나서야 멈추었다. 미츠야는 예상과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얼굴을 확인하자 그녀의 옆에 앉고는 몸을 살살 흔들기 시작했다. 분명 집에서 쉬고 있어야 할 유이가 어떤 이유로 여기에 있는 건지, 왜 여기서 자고 있는 건지 의문은 머릿속에서 똬리를 틀고 있었지만 진상을 아는 것도 그녀가 깨어난 후에야 가능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미츠야는 도통 깨지 않는 그녀를 깨울 수밖에 없었다. 유이, 일어나봐. 여기서 자면 입 돌아가. 흔들어도 떠질 생각조차 없어 보였던 그녀의 눈이 반응했다. 속눈썹이 바르르 떨리더니 한껏 졸음이 묻어나오는 눈이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며 규칙적으로 감았다가 뜨기를 반복한다. 그러고는 어느 정도 정신이 들고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할 무렵, 미츠야와 유이의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여전히 졸리다는 듯이 눈을 찡그려서 뜨고는 그를 응시하다가 꿈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인식한 건지, 마치 한여름의 말간 하늘과도 같은 부드러운 웃음을 지었다.

“… 미츠야다.  집회는 끝났어?“
“방금 끝났어. 피곤하면 집에 가야지, 왜 여기서 자고 있어. 불편한 것도 있지만 여기서 자면 위험하잖아.”
“보고 싶어서. 그냥, 미츠야가 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여기로 오고 있었어. 잠깐 기다릴 겸 앉아있었는데, 오늘 좀 피곤했는지 깜빡 잠들었지 뭐야.”

혼을 내려는 듯이 진지한 얼굴을 한 미츠야의 모습에 유이는 눈을 비비다가 말고 대꾸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유이는 자각을 한 채로 제 의지로 이곳으로 온 거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녀의 말을 들은 미츠야의 표정이 순식간에 풀렸다는 것이었다. 혼을 내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미츠야의 굳은 결심이 잘게 흔들렸고, 결국 그는 두손 두발을 들며 헛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차마 혼을 낼 수 없었다. 연인이 밖에서 졸 정도로 피곤한데도 불구하고 늦은 시간까지 자신을 기다린 이유가 보고 싶어서라는데, 화를 낼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는 진지하게 굳어있던 얼굴을 허물고 유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정한 손길이 머리 위를 느릿하게 오가자 유이가 기분 좋은 고양이처럼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었다.

”못 말려, 진짜. 밤에 여기로 오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데…. 다음부터는 위험하게 여기에 오지 말고, 보고 싶으면 연락해. 내가 데리러 갈 테니까. 연락하면 바로 너에게 갈게.“

이번 일은 혼내지 않겠다는 의미를 한가득 담은 채로 이야기하는 그의 태도에 유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서야 미츠야는 여느 때와 같이 다정한 미소를 짓고는 유이의 손을 잡았다. 다만 그가 예상하지 못한 것은, 그들의 주변에 아직 집에 돌아가지 않은 대원이 많았다는 것과 대원들이 생각보다 소문이 무성한 미츠야의 연애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다는 것이었다. 말 한마디에 표정이 풀어지는 모습과 다정하게 머리를 쓰다듬는 모습, 거기에다가 자연스럽게 손을 잡는 모습까지 전부 목격해 버린 대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미츠야가 평소에 폭력적이라거나 고압적인 사람은 아니었고, 오히려 그런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이에게 보여주는 모습만큼 다정한 것도 아니었다. 물론 또래 남자에게 다정할 수 있는 이는 별로 없었기에 모두가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지금 그의 모습이 예상을 훨씬 벗어났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평소 그는 친근하면서도 거리감이 느껴졌고, 쉽사리 다가갈 수 없는 사람이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기본적으로는 친절했고, 선을 지키는 편이었지만 쉽게 곁을 내어주지는 않았다는 의미다. 그와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래봤자 함께 도쿄 만지회를 창립한 창립 멤버와 대장, 그리고 부대장과 소수의 이 번대 대원이 전부였다. 물론 그마저도 본인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 보고 있는 그의 모습은 여태껏 생각해 온 이미지를 전부 뒤집어엎어 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는 행위였다. 연인을 대할 때의 그는 조심스러웠고, 부드러웠으며, 대원들과 있을 때는 단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는 모습이었다. 대원뿐만이 아니라 대장과 부대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물론 그들은 이게 당연한 것이라 단언할 수 있었다. 오히려 미츠야가 유이에게 하는 것과 같이 타인을 대하는 게 더 문제인 건 당연했다. 하지만 그런 것과는 별개로 한 번도 보지 못한 미츠야의 이면은 대원들에게 의문을 주기에 충분한 사유가 되어주었다. 그들은 미츠야의 행동의 원인이 유이일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그를 그렇게 만든 유이에 대해서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다. 어떤 사람이길래 그가 저렇게까지 구는 건지, 그런 궁금증에 괜히 유이의 얼굴을 보려고 기웃거리는 이도 있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미츠야는 그 시선을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눈치채지 못하는 게 이상할 정도로 대원들의 태도는 노골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바이크에 시동을 걸려던 것도 멈추고 그 위에 앉아서는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아닌 척 딴청을 부리다가도 계속해서 그들의 쪽을 힐끔힐끔 바라보았다. 한두 명이 해도 티가 나는데, 한두 명도 아니고 여러 명이 이쪽을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은 모른 척조차 해줄 수 없었다.

“다들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가 봐, 누구 하나 집에 갈 생각을 안 하네. 마이키한테 집회 빈도랑 시간을 늘려야겠다고 건의라도 해야 하나?”

미츠야가 주위를 한 번 둘러보며 들으라는 듯이 툭 말을 던졌다. 오랜 시간 동안 서서 이야기를 듣고 보고 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닌지라, 대원들은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미츠야는 유이에게 일어나자며 그녀의 몸을 일으켜 세우고는 한 손으로는 가방을 들었다. 문제집이 얼마나 들어있는 건지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로 묵직한 가방을 들고 있자니 유이의 피로가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도 했다. 이런 가방을 매번 들고 다니니, 피로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앞으로는 그녀가 한사코 사양한다고 해도 대신 가방을 들어줘야겠다며 속으로 다짐하고는 그가 품 안에 유이를 숨겨서 자리를 옮겼다. 여전히 그의 움직임을 따라서 약간의 시선이 따라붙기는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대원들의 눈치가 바닥을 치는 것은 아닌지라 적당히 눈치를 주면 시선을 피하며 바이크를 정비하는 척이라도 했다. 그는 차마 말로 하지는 못하고 눈이 마주칠 때마다 시선을 돌리고 집이나 가라는 듯한 압박을 주며, 자신의 바이크 앞까지 왔다. 헬멧을 꺼내어 유이의 머리에 살포시 얹고는 끈까지 꽉 조인 그가 안전을 전부 확인하자 바이크에 시동을 걸었다.

“허리 잡아, 유이. 절대 손 떼지 말고 꽉 잡고 있어야 하는 거 알지?”
“응, 꽉 잡고 있을게. 가자 미츠야!”

미츠야의 말에 유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신난 목소리로 대꾸했다. 미츠야를 또 만난 것도, 함께 집에 갈 수 있다는 사실도, 그의 바이크에 타서 자연스럽게 껴안을 수 있다는 사실도. 지금 상황의 모든 요소가 그녀를 신나게 만들었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공부에 지치고 피로했던 몸이 기분에 영향이라도 받은 건지 쌩쌩하기 짝이 없었다. 유이는 품 한가득 미츠야를 껴안고는 새카만 도로 위를 달렸다. 건물은 오색찬란한 빛으로 물들었고, 밤하늘은 크고 작은 별들이 박혀서는 기묘하게 빛이 났다. 유독 커다랗고 동그란 달마저 그녀에게 오늘의 행복을 속삭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유이는 이 순간이 좋았다. 지금 이 순간이 멈추길 바란다는 말은 순정 만화에서나 나올 법하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을 살면서도 나올 수 있는 말이었구나. 그녀는 지금 딱 이 순간이 멈추기를 바랐다. 그러나 동시에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가기를 원했다. 한순간에 갇혀있기에는 그와 보내야 할 시간은 너무나도 많았고, 앞으로도 행복할 일은 넘쳐날 게 분명하니까. 앞으로도 유이의 행복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 운명이 있다면, 그게 자신의 운명일 것이라고 유이는 굳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703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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