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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春消失

mitsuyui 2023. 6. 24. 11:24

(뫄님 커미션)
靑春消失 :: 청춘소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차가운 바람이 뺨을 날카롭게 스치고 지나간다. 순식간에 붉어지는 코와 볼이 겨울의 추위를 짐작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유이는 손에 쥐어진 핸드폰 화면을 힐끗 바라보았다. 2018년 1월 10일. 딱딱한 글씨로 쓰인 날짜가 눈에 들어왔다. 새해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 신년 휴가 덕분에 한동안 집에서 쉬던 유이는 오랜만에 출근을 하기 위해 따듯하고 안전한 집에서 벗어나 회사로 향해야 했다. 회사에서 할 일과 오랜만에 만날 상사를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에 언제나 품고 사는 사직서가 떠오르다가도 금세 현실에 납득해 착실히 출근을 위해 한 발자국씩 걸음을 옮긴다. 그래, 돈은 벌고 살아야지. 물론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마음에 든다는 이유도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 하기 싫다고 안 할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어린아이한테만 통용되는 이야기. 나이 먹을 대로 먹은 입장에서는 적용되지 않았기에 속으로는 가기 싫다, 라고 생각하면서도 몸은 제 할 일을 다 하기 위해서 움직인다.

“유이, 텀블러 두고 갔어.”

오랜만의 출근에 지각하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둔 탓일까, 여유롭게 가도 괜찮을 정도로 넉넉하게 남은 시간을 체크하며 느긋하게 현관문에서 멀어지던 그녀가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몸을 돌렸다. 학생 때부터 사귀기 시작해서 어른이 된 지금, 동거를 하게 된 미츠야가 순식간에 사이의 거리를 좁히며 검은색 텀블러를 손에 쥐어 주었다. 번듯한 정장을 입은 그의 모습은 몇 년이나 봐왔지만 옛날의 모습과 쉽게 매치가 되지 않기 때문인지, 언제나 낯설게 느껴졌다. 어쩌면 집 밖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이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집에서는 주로 편한 옷을 입으니까, 출근 전후에만 볼 수 있는 모습이 몇 년이 되도록 어색하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 어쩐지! 뭔가 잊은 것 같더라. 고마워, 미츠야.”
“회사 잘 갔다 와. 이따가 보자.”
“응, 미츠야도 잘 갔다 와. 오늘 저녁에 맛있는 거 먹자!”

언제나처럼 평범하게 인사를 나누고, 유이는 몸을 돌려 다시 회사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오늘 저녁 뭐 먹지, 그런 생각을 하며 걸음을 옮기자 순식간에 회사 건물에 도착했다. 늘 그렇듯이 바쁘게 일하는 직장 동료들과 짧은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은 유이는 겉옷을 대충 의자에 걸쳐두고 컴퓨터 전원을 켰다. 머릿속에는 일하기 싫다는 생각이 뭉게뭉게 피어올랐지만, 손은 본능처럼 움직이며 지루한 반복을 이어갔다. 여기저기에서 윽박지르는 소리와 급한 타자 소리가 울려 퍼진다. 초반에는 적응이 되지 않던 분위기도 이제는 일상이나 다름없었기에 유이는 금세 모니터 속을 빨려 들어갈 것처럼 집중할 수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었을 때였다. 점심시간이니 식사하고 오라는 말에 하던 일을 슬슬 정리한 유이는 음료 한 잔 마실 겸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래는 회사 옆 샌드위치 가게에 들러서 뭐라도 먹었을 테지만, 오늘은 속이 더부룩한 것이 괜히 빵을 집어넣었다가는 얹힐 것만 같았다. 쉬다가 오랜만에 나와서 그런 건지, 컨디션이 유독 안 좋아서 유이는 과감히 점심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어제 먹은 저녁 때문인가, 같은 태연한 감상을 내리면서 늘 먹던 음료를 주문한 그녀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아무런 알림 없이 고요하던 핸드폰이 울린 것은 점심시간이 전부 끝나갈 무렵이었다. 지이이잉― 핸드폰이 마구 울어대며 책상 위에서 부들부들 떨어댄다. 화면을 한가득 채우는 루나라는 글자를 보자, 유이는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평소에도 자주 연락했기 때문에 별로 특이할 것도 없었다. 그래봤자 오늘 저녁은 같이 먹자, 라거나 귤을 너무 많이 샀는데 조금 나눠줄까, 같은 평범한 이야기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유이는 전화를 받고는 스피커를 귀에 가져다 댔다.

“여보세요?”
[“… 언니, 어떡해…. 오, 오빠가…….”]

태연하게 받은 것이 무색하게도, 기계를 통해서 넘어오는 목소리는 잔뜩 불안하게 떨리고 있었다. 유이에게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당황할 틈도 주어지지 않았다. 평소와는 다르게 울음을 잔뜩 참는 기색으로 루나가 더듬더듬 말을 이어갔다. 쿵, 쿵, 쿵. 심장이 뒤에 이어질 내용을 듣고 싶지 않다는 듯이 큰 소리로 귓가를 울려댔다. 그런 와중에도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기계음은 잔인할 정도로 또렷하게 귓속을 파고들었다. 오빠가, 오빠가 죽었어…. 유이는 대답을 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전화기를 쥔 채로 눈만 깜빡였다. 그러나 태연자약한 겉모습과는 다르게 머릿속에서 루나의 말이 산산조각이 나서 흩어지고 있었다. 내가 방금 무슨 말을 들은 거지? 유이가 가장 먼저 떠올린 생각은 이 상황에 대한 의구심이었다. 차마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말이라서, 그녀의 머릿속은 딱딱하게 굳어서는 제대로 된 사고를 하지 못했다.

[“언니…, 이쪽으로 와야 할 것 같아…. 저, 언니?”]

아무런 대답조차 하지 않는 유이에 의문을 느낀 루나가 다시 한번 그녀를 부를 때까지, 아무런 대꾸도 반응도 하지 못하던 유이가 퍼뜩 놀랐다. 누군가 머리를 망치로 세게 후려치기라도 한 것만 같았다. 혹시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유이는 그저 멍하니 눈을 깜빡이다가 다리를 강하게 꼬집었다. 욱신거리는 다리에 그녀는 지금 상황이 꿈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여전히 나사가 하나 빠진 듯 머리가 멍하다. 이게 꿈이 아니면 현실이라는 건데. 정말 미츠야가 죽었다고? 루나가 거짓말이라도 하는 거 아닐까. 애써 현실을 부정하려고 해도 이 모든 게 현실이고 진실이라는 것은 유이가 가장 잘 알았다. 쿵. 다시 한번 심장이 크게 울린다. 마치 세상이 멈춘 것만 같았다. 머리에는 거대한 우주가 들어차서는 모든 것이 허공에서 부유했고, 온 세상이 고요해져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참으로 기이하게도, 눈은 그저 건조했다. 그녀가 받은 충격이 우스워질 정도로 몸의 반응은 태연했다. 눈물도 나지 않았고 가슴 한구석이 아프거나 죽을 듯이 슬프지도 않았다. 그저 이 모든 게 거짓으로 느껴지고, 제대로 된 사고를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까? 실감이 나지 않는 죽음에는 흐를 눈물도 없다는 것처럼, 내심 그의 죽음을 믿지 못하는 마음 한구석의 온도를 따르기라도 한 것처럼 양 뺨은 차가웠다.

[“언니? 유이 언니!”]
“아, 어, 루나. 거기, 거기가 어디야?”

대답이 돌아오자마자 유이는 겉옷을 챙겼다. 정신은 하나도 없었고 머릿속은 여전히 녹은 아이스크림처럼 불쾌하게 끈적했지만, 지금은 한치의 머뭇거림도 사치다. 전화기 너머의 루나가 생생하게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미 한바탕 울고 연락한 건지, 전화를 통해 미츠야의 부고를 전하던 루나는 울지 않았다. 대신 그 감정을 대신 채워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잔뜩 떨리는 목소리가 귓가에서 메아리처럼 울리고 있었다. 많이 커서 이제는 한 사람의 몫을 할 수 있게 된 어른이라고 해도 여전히 그녀의 눈에는 한없이 어린 애였기에, 유이는 루나가 걱정되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녀와 마찬가지로 미츠야의 부고를 들었을 마나도. 다른 누구도 아닌 친오빠의 죽음이었다. 그것도 아주 어릴 적부터 손수 자신을 키운 친오빠가 하루아침에 시신으로 발견되었다는데, 그 누가 태연할 수 있을까. 루나와 마나는 유이에게도 가족 같은 존재였기에 그녀는 한 아름 걱정을 품은 채로 성큼성큼 출구로 걸어 나갔다.

“아키바 씨! 저, 어디 급한 일 있으세요? 보고도 없이 퇴근하시면 무단 처리가 되니까 말씀드리고 반차를 쓰시는 게….“

평소 친하게 지내던 직장 동료가 그녀의 앞을 막아서고는 말했다. 유이는 생각도 못 했다는 듯이 눈을 깜빡이다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이런 순간마저 그녀는 현실 속에서 살고 있다. 연인의 죽음에도 달려 나가지 못하고, 상사에게 하나하나 보고하고 가야 한다니. 현실은 생각보다도 훨씬 더 시궁창이다. 그녀는 당황스러움 반, 걱정 반의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옆자리 동료를 물끄러미 보다가 느릿하게 대꾸했다.

“급하게 장례식장에… 가야 해서, 차마 그 생각을 못 했네요.”

흐읍. 동그란 눈이 더 커지며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켠다. 유이는 그 일련의 변화를 조금 씁쓸한 기색으로 바라봤다. 장례식장, 이라. 제 입에서 나온 단어가 어색하다는 듯이 입가를 매만져 보았지만 이질감은 점점 커져갈 뿐, 사라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 부장님께서는 지금 회의 중이세요. 저! 아키바 씨, 제가 말씀드릴 테니까 일단 가보세요. 잘 말씀드려서 지장 없게 해드릴게요.”

감사해요. 살짝 숙인 고개를 따라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이 시야를 간지럽힌다. 유이는 앞에 있는 친절한 직장 동료가 위로를 건네야 하나, 싶은 얼굴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것을 얼핏 볼 수 있었다. 약간은 동정 어린 얼굴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어쩔 줄 모르며 허둥지둥하던 그녀는 이내 어떠한 사고에 이르기라도 했는지 그 물렁한 표정을 단단히 굳히고는 짧게 조의를 표합니다, 라고 말했다. 어쩌면 이편이 훨씬 나았다. 어렸을 적에는 말이 위로가 됐지만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지금은 말이 속까지 닿아오지 않는다. 마냥 해맑던 어린 시절로부터 꽤 많은 시간이 지나온 지금까지, 그 시간 동안 너무나도 많은 소실을 겪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 소실의 과정에서 말에는 수많은 게 담길 수 있다는 것과 그와 반대로 아무것도 담기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기에 말이 사람을 채우기란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더 고마운 것이었다. 이처럼 인생에 가끔 던져지는 말 없는, 그러나 확실하기 짝이 없는 호의가.

유이는 그대로 회사에서 벗어났다. 덜컹거리는 택시에 맞춰 멍하니 창을 바라보고 있으니 꿈속을 헤엄치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몽롱했다. 머리는 여전히 제대로 된 사고가 되지 않았고 심장은 고장이라도 난 듯 규칙적으로 뛰고 있었다. 평소와 다른 것이라고는 고작 오후 한 시가 됐을까 말까 한 시간에 도로 위에 있다는 것이었다. 가슴 한구석이 뻐근하게 주저앉는다. 눈물조차 흘리지 않는 저를 보고 미츠야는 무슨 생각을 할까. 문뜩 유이는 생각했다. 야속하게 느낄까? 그도 아니면 눈물조차 흘리지 못하는 연인을 동정할까. 글쎄. 당사자가 더 이상 이 세상에서 살아가지 않는다는 점에서 모든 답은 오답이 된다. 이제 영원히 이 물음에 대한 정답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덜거덕거리던 택시가 병원 앞에 매끄럽게 멈추었다. 장례식을 치르기 전, 시신을 직접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아마도 루나와 마나가 유이를 위해서 배려해 준 듯했다. 마지막 모습은 보고 가라고. 그녀는 안내를 받아 영안실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수많은 죽음이 이곳에 안주하고 있었다. 시체가 부패하지 않도록 방지하기 위함인지, 서늘하기 짝이 없는 영안실의 온도에 유이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아니, 어쩌면 영안실이 춥기 때문이 아닐지도 모른다. 겨울이라는 계절에 맞추어 두꺼운 옷을 입고 있던 그녀에게 고작 영안실의 온도는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었다.

안쪽에는 루나와 마나가 있었다. 바른 자세로 누워있는 시신 한 구를 둘러싸고, 아이들은 말없이 그 시신을 내려다보았다. 착잡한 것이 잔뜩 뭉쳐있는 그 표정에서는 짙은 슬픔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유이의 코끝에서 출렁이는 지독한 죽음의 냄새처럼, 루나와 마나에게도 그 냄새가 서서히 기어오르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사람은 많은데 쓸쓸하기 짝이 없는 외로운 공간이다. 온기라고는 존재하지 않았고, 그저 고요한 적막만이 존재한다. 이곳에 미츠야가 누워있었다. 온기가 존재하지 않는 이곳에.

유이를 발견하자 루나가 벌떡 일어났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처럼 입을 몇 번 달싹이다가 종래에는 아무런 말도 못 하고 굵은 눈물방울을 하나둘 흘리기 시작했다. 언니, 오빠가, 흑…. 유이를 향한 건지, 아니면 아무런 대답 없이 고요한 미츠야를 향한 건지 모르는 울음소리가 적막을 가득 채운다. 울지 않으려고 입술을 꽉 깨물고 주먹을 쥐고 있던 마나도 이내 울컥했는지 양 뺨을 적셨다. 유이는 여전히 건조한 제 뺨을 손끝으로 훑었다. 여전히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현실감 역시 여전히 없었다. 그녀의 시간은 계속해서 저녁 메뉴를 생각하던 별 시답지 않은 때에 멈추어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이 시간은 그녀의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타인의 것을 빌려오기라도 한 것처럼 한없이 어색한 흐름. 유이는 속을 가득 채워오는 것이 애도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죄책감이라는 걸 알았다. 죽은 이를 위해 흘리는 눈물이 없다. 여전히 건조하다. 울고 있는 루나와 마나와는 다르게 유이는 그저 메마른 눈동자로 아이들을 훑었다. 차라리 이 모든 상황이 장난이나 꿈이었으면 좋겠다.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감히 유이는 그러길 바랐다.

데굴데굴 굴러간 눈동자가 이내 새하얀 천으로 덮여있던 시신에 닿았을 때, 유이는 잠시 그 모습에 어떠한 말도 하지 못하고 눈만 깜빡였다. 그제야 온몸에 찬물을 확 뿌리기라도 한 것처럼, 현실감각이 하나둘 돌아오기 시작했다. 지금 그녀의 앞에 있는 사람은 미츠야였다. 미츠야 타카시. 그저 멍하기만 했던 머리가 끼익거리는 마찰음을 내면서 천천히 굴러간다. 미츠야. 이 천을 걷어내면 미츠야가 있다. 아니, 정확히는 미츠야의 죽음이 있다. 죽은 미츠야가, 더 이상 숨을 쉬지 않는 미츠야가, 그리고 이제는 그 다정한 눈동자를 뜨지 못할 미츠야가. 유이의 손이 잘게 떨리면서 시신의 얼굴에 있는 천으로 향했다. 루나와 마나는 그런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는 건지 아무런 제재 없이 눈동자로 손을 좇을 뿐이었다. 크게 호흡을 해보아도 잘게 떨리는 손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아서, 유이는 그대로 천을 잡았다. 불길하게 생긴 하얀색 천이 그대로 들어 올려진다.

투둑. 툭. 그제야 감정이 제 기능을 한 건지, 눈에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기 시작하더니 눈물이 바닥을 향해 떨어지기 시작했다. 미츠야가 죽었다. 미츠야 타카시가, 오랜 연인이 정말로 죽은 것이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믿지 못한 사실을 확인받자 유이는 속 한구석의 울렁거림을 느꼈다. 그는 그녀에게 있어서 청춘 그 자체였다. 인생의 전부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를 이룬 큰 조각이었고, 언제나 곁에 있어 준 연인이었다. 굳이 연인이라는 틀 안에 관계를 묶지 않아도 충분히 거대한 삶의 장면을 차지한 이가 바로 미츠야였다. 유이는 삶의 조각을 상실했다. 그녀를 가득 채운 이의 부재가 앞으로 어떤 식의 영향을 미쳐올지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건 미츠야는 죽었고, 오늘 유이는 청춘을 잃었다. 어린 날에 손을 잡고 도란도란 이야기한 간지러운 마음도, 함께 바이크를 타고 갔던 바다의 포말도, 눈이 마주칠 때마다 부드럽게 휘어지던 다정한 눈빛마저도. 그녀가 사랑한 것들은 그와 함께 저물었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미츠야와 유이는 오랜 시간을 함께했고, 인생의 절반을 서로와 나누었다. 삶의 반쪽이 하루아침에 무너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후드득 떨어지는 눈물은 아까의 건조한 감각을 지워버리고 싶기라도 한 것처럼 쉴 새 없이 흘렀다. 심장은 가쁘게 뛰었고 눈물 탓에 숨은 턱턱 막혀왔다. 그렇지만 유이는 소매로 눈물을 전부 닦아버렸다. 미츠야를 위해 우는 것은 조금 후의 일이다. 마지막이 될 모습을 눈에 담아야 했으니까. 그와의 마지막 만남을 흐려진 시야 속에서 이루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유이는 눈을 크게 뜨고 그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미츠야의 모습은 고요하기 짝이 없었다. 목에 남아있는 진한 멍만 아니었어도 그가 자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졸린 목을 제외하고는 온전했고, 마치 시신을 훼손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깨끗했다. 그녀는 잘게 떨리는 손으로 그의 뺨을 조심스럽게 감쌌다. 언제나 닿은 부위가 불에 덴 것처럼 화끈하기만 했는데, 지금 유이의 손끝에서 느껴지는 것은 죽은 이의 서늘함 뿐이었다. 진짜 죽었구나. 처음부터 이 상황이 장난도, 거짓도, 꿈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다시 한번 상기될 때마다 심장이 덜커덩 내려앉고 머릿속은 어지럽게 돌아간다. 유이는 미츠야의 뺨을 살살 쓸어내렸다. 미츠야, 죽는 순간에 어떤 생각을 했어? 유이는 그가 자신을 떠올렸기를 바랐다. 적어도 미츠야가 고독과 함께 저물지 않았기를. 삶의 주마등을 떠올릴 때 그 조각 속에 들어있다면 그보다 더한 영광은 없을 것이다. 미츠야의 강렬한 기억으로 박혔다는 의미니까. 유이는 미츠야의 차가운 몸을 만지던 손을 떼어냈다. 그러나 계속해서 바라보고 바라봐도 뒤를 돌면 행여 잊어버리기라도 할 것만 같아서, 시선은 떼어낼 수 없었다.

“… 미츠야, 타카시, 이게 뭐야. 다녀온다고, 오겠다고 약속했잖아. 약속을 어기는 게 어딨어…….”

유이의 무릎이 힘없이 꺾였다. 그녀는 여전히 떨리는 손으로 미츠야의 손을 잡았다. 울고 있을 때 눈물을 닦아주던 다정한 손이 더 이상은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지 않았다. 유이는 헐떡거리는 숨을 흡, 멈추고는 미츠야의 굳은살이 박인 손을 만지작거렸다. 이제 이 손을 잡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다시는 그의 손을 잡을 수 없을 것이다. 유이의 목소리가 가는 실처럼 얇게 흘러나왔다.

”빨리 일어나, 응? 일어나서 다녀왔다고 말하고 꼭 안아주란 말이야….”

여전히 대답은 없었다. 답이 오지 않는 말을 던지던 유이가 고개를 푹 숙였다. 꼬박꼬박 답을 해주던 상냥한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메아리처럼 유이의 흐느낌만이 영안실에 울려 퍼졌다. 오늘만큼 미츠야가 원망스러웠던 적이 없다. 아니, 사실은 그를 원망하고 있는 게 아니다. 감히 원망할 수 있을 리가. 오히려 유이가 원망하고 있는 쪽은 스스로에 가까웠다. 오늘 아침 고작 저녁 이야기나 한 자신이, 저에 대한 그의 마지막 기억이 고작 그런 거라는 사실이, 그에게 더 많은 말을 하지 못한 스스로가 너무나도 미웠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좋아한다고 더 자주 말해줬다면 지금 후회하고 있지 않았을까? 감정의 찌꺼기가 아무렇게나 속을 굴러다닌다. 유이는 힘이 들어가지 않아 떨리는 다리를 겨우겨우 움직여서 몸을 일으켰다. 꽉 붙잡고 있던 지지대가 사라지자 그의 손이 툭, 힘없이 늘어진다.

“타카시….“

루나와 마나가 양쪽에서 꽉 끌어안았지만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은 쉽게 갈무리되지 않았다. 하긴, 지금 상황에서 태연할 수 있는 게 더 이상했다. 십여 년 동안 함께 한 이가, 그것도 연인이 죽었는데. 치후유를 잃은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미츠야마저 잃는 것은 유이에게 너무나도 큰 시련이었다. 물론 미츠야가 위험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어쩌면 목숨에 위협이 있을 거라는 사실도, 이미 각오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갑작스럽게 이별이 찾아올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지극히 평범한 날에. 늘 그랬던 것처럼 아침 인사를 하고 각자의 일을 하려고 떠났을 때까지만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미츠야는 알고 있었을까, 오늘 제가 죽으리라는 사실을. 어느 쪽이어도 변하는 건 없었지만 미츠야가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다면 그것만큼 슬픈 일은 없으리라. 누구의 소행인지 미츠야는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노 만지로. 무적의 마이키. 미츠야의 오랜 친구이자 도쿄 만지회의 총장으로 불리던 이가 그를 죽였음은 의심할 여지 없는 사실이었다. 아니, 미츠야 뿐만이 아니다. 도쿄 만지회의 대부분이 그의 손에 죽어가고 있었다. 오랜 친구도, 연인도 그에 의해서 잃었다. 그래도 유이가 그를 미워할 수 없는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치후유도 미츠야도 마지막 순간까지 그를 걱정했을 테니까. 당사자도 미워하지 않는데 제삼자가 미워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지금 그녀의 눈앞에 핏기 하나 없는 미츠야의 시신이 누워있는데도 불구하고. 잃은 사랑이 당장 눈앞에 있는데도 그녀는 감히 원망을 입에 담을 수 없었다. 미츠야가 그를 얼마나 아끼고 걱정하고 애정하는지 알고 있기에. 미츠야가 유이의 청춘이라면, 미츠야의 청춘은 도쿄 만지회였다. 섭섭한 말일 수도 있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했다. 사실, 질투조차 나지 않았다. 그녀는 도쿄 만지회의 2번대 대장 미츠야도, 수예부 부장 미츠야도 더없이 좋아했으니까. 미츠야가 탔던 바이크가, 그가 그려낸 스케치가, 그의 검은색 특공복이. 모든 것이 좋았다. 그렇기에 지금 울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좋았던 이와의 이별이었으니까.


“루나, 마나…. 미안해, 바보같이 울어버려서. 가장 힘든 건 다른 누구도 아닌 가족인 너희일 텐데, 언니라는 사람이 애같이 굴었네.”
”유이 언니….“
“너희만 괜찮으면 우리… 이제 보내줄까. 목, 많이 아파 보여. 미츠야도 편히 쉬고 싶을 텐데, 내가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다.”

보내기 싫어도 보내야 한다. 어렸을 적에는 부정하던 문장이 어떤 의미인지 이제는 알고 있었다. 유이는 푹 젖어버린 소매로 다시 한번 눈가를 문질렀다. 지독하게 붉어진 눈 주변이 따갑기 짝이 없었다. 유이는 마침내 미츠야에게 붙어있던 시선을 떼어내고는 흰 천을 다시 그의 얼굴 위에 덮어주었다.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이다. 어쩌면 오래 걸리지 않을 수도 있었다. 지금 당장은 다른 길을 걷고 있어도 결국 종착지는 서로일 테니까, 유이는 미츠야가 편히 쉬도록 보내줄 수 있었다.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는 사실만이 그녀를 위로했다. 잠시 못 보는 것뿐이라고, 결국은 또 만나게 될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았다.

유이의 인생은 큰 축을 잃었지만, 세상은 계속해서 돌아갈 것이다. 미츠야가 죽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바쁘게 내일을 살아갈 것이며, 해는 붉게 타오르며 뜰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가 없는 세상을 살아간다는 사실이 막막하게 느껴졌지만, 결국 그녀도 그러한 삶에 적응하게 될 것이다. 그래도 미츠야, 너무 미워하진 말아줘. 너를 당장 따라가지 못해도 나는 미츠야를 계속 좋아할 거니까, 한 번만 봐주라. 유이는 머릿속으로 미츠야의 얼굴을 그려냈다. 관계자가 와서 장례에 대해 안내하기 전까지, 언제 어디서든 그려낼 수 있을 정도로 반복해서.

장례식에는 많은 사람이 찾아왔다. 유이는 상주인 루나를 도와서 장례를 치렀고, 미츠야의 주변에는 순식간에 새하얀 국화꽃으로 가득 찼다. 같은 반이었던 동창, 수예부 부원들, 도쿄 만지회 대원이었던 이들… 수많은 이가 찾아와서 미츠야의 죽음을 기렸다. 아마도 그가 봤다면 자신의 삶이 그리 헛되지만은 않아서 다행이라고, 그렇게 웃어버렸을 것이다. 유이는 미츠야의 사진이 들어간 액자를 한참 바라보았다. 장례식이 전부 끝나서 사람들이 전부 돌아가 버리고 이곳에 남은 것은 그녀와 미츠야, 그리고 식을 정리하는 루나가 끝이었다. 유이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루나는 본가에 있는 미츠야의 물건을 정리해야 했고, 그녀는 함께 살던 집으로 돌아가 미츠야의 물건을 정리해야 했다. 그렇기에 멍하니 앉아만 있을 수는 없었다.

아무도 없는 집은 겨울의 냉기에 물들어 있었다. 온기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었고, 어딘가 텅 비어있는 듯한 공허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유이는 잠시 현관에 우두커니 서서는 집을 둘러보았다. 지금 당장이라도 미츠야가 방에서 나와 그녀를 반겨줄 것만 같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러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어두운 집의 불을 켜고 잠시 멍하니 그가 살았던 흔적을 훑어보던 유이는 곧바로 미츠야의 방으로 향했다.

그의 방에는 당연하게도 그의 흔적이 잔뜩 묻어있었다. 옷걸이에 걸려있는 옷에서는 그가 쓰는 향수 냄새가 여전히 은은하게 풍기고 있었고, 책상에는 아무렇게나 어질러진 스케치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유이는 또다시 울 것만 같아서 잠시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미츠야의 흔적을 지우고 싶지 않은 마음 반, 그가 걱정하지 않게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의 물건이 있으면 안 되니 정리해야 한다는 마음 반. 밥을 먹다가, 씻다가, 텔레비전을 보다가 갑자기 울어버리고 싶은 게 아닌 이상 미츠야의 물건은 정리해야 할 수밖에 없었다. 유이는 손을 움직여 옷장에서 옷들을 꺼내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가 좋아하는 옷, 같이 산 옷, 잘 어울린다고 좋아했던 옷. 추억에 젖어있는 옷을 하나하나 꺼내고 만질 때마다 속에서 무언가가 울컥울컥 튀어나왔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손은 지체없이 움직여서 순식간의 그의 옷들을 상자 안에 차곡차곡 정리해 낸다. 유이는 잠시 그 상자를 바라보다가 테이프로 입구를 막아버렸다. 그러고는 그의 책상 앞으로 가서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종이를 모았다. 진작 져버린 꿈인데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못한 디자인 스케치. 얼마나 이 일을 좋아했는지 알고 있었기에 함부로 다룰 수 없었다. 유이는 종이를 모아서 가지런히 정리했다. 방 곳곳에 있는 스케치를 모으니 순식간에 두꺼운 종이 뭉치가 생겨났다.

”어…?“

혹시라도 더 남아있는 스케치가 있지는 않을까, 방 안을 살피던 유이가 편지 봉투를 발견한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다. 봉투에는 익숙한 글씨체로 대문짝만하게 유이에게, 라고 적혀있어서 그녀는 그 편지의 주인이 자신이라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잠시 봉투를 보며 갈등하다가,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조심스럽게 뜯어내자 편지 한 장이 들어있었다. 한눈에 봐도 미츠야가 직접 쓴 것이 분명한 편지였다. 그녀는 잠시 그 편지를 쓸어내리다가 찬찬히 글씨를 눈으로 좇았다.

안녕 유이, 로 시작하는 편지는 그리 길지 않았다. 그녀는 잠시 울렁거리는 마음에 고개를 치켜들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밝게 빛나는 전등이 눈에 가득 들어온다. 울지 않고 읽을 수 있을까. 정답은 읽은 후에야 알 수 있겠지만, 유이는 다시 시선을 돌려 편지를 눈에 담았다.

[안녕 유이, 네가 지금 이 편지를 읽고 있다는 것은 필히 나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거겠지. 걱정이네. 치후유의 부재도 아직 받아들이기 힘들 텐데 나까지 네 곁에 없다고 생각하니까. 되도록 네가 이 편지를 안 읽었으면 좋겠지만, 내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은 모양이야.]

단정한 글씨체가 이미 전부 받아들이기라도 한 것처럼 담담하게 죽음을 언급했다. 미츠야, 이미 전부 예상하고 있었구나. 편지에는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고는 했지만, 결국 이 편지가 그녀의 손에 의해서 개봉될 것이라는 것마저 예상하고 있는 듯했다. 응, 미츠야. 전부 네 말대로야…. 네가 오늘 내 곁을 떠났어. 유이는 속으로 편지에 대꾸하며 천천히 눈동자를 굴려서 문장을 담았다.

[이제는 내가 네 눈물을 닦아줄 수 없으니까, 너무 많이 울지는 않았으면 좋겠는데. 있지, 유이. 나는 정말 괜찮아. 어느 정도 각오하고 있기도 했고, 피하고 싶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으니까 그리 무섭지도 않았어. 그러니까 내 죽음을 너무 오래 쥐고 있지는 마. 내 죽음에 슬퍼해 주는 건 고맙지만, 나는 너를 울리고 싶지 않은걸. 울리지 않겠다고 결심했으니까, 네가 많이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미츠야 타카시, 이 바보. 유이는 울컥해서는 괜히 그렁그렁하게 물이 맺힌 눈가를 문질렀다. 더 슬퍼하고 기억해달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해야지. 많이 울어달라고 이야기해도 모자랄 판국에 울지 말라니. 정말 바보 같을 정도로 상냥하다. 그 상냥함이 오히려 유이를 울게 한다는 사실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그녀는 미츠야가 자신에게 조금 더 많은 걸 바라기를 원했다. 오랫동안 애도해달라고, 슬퍼하고 기억해달라고, 그렇게 이야기해도 되는데. 욕심 부려주지. 흐릿해진 시야 때문에 글씨가 제대로 안 보였지만 유이는 읽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가지런히 쓰여진 문장은 애정을 꾹꾹 눌러 담기라도 한 것처럼 한 글자 한 글자가 신중했고, 미츠야를 몹시 닮아있었다.

[그리고 하나 부탁이 있는데…. 유이. 전에 들었으니 짐작하고 있겠지만, 도만이랑 마이키를 너무 미워하지는 말아줘. 누군가를 미워하면서 살기에는 네가 너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지만 만에 하나 네가 나 때문에 누군가를 미워하면서 살게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러니까, 조금만 슬퍼하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네 웃음을 보여줘. 나는 네가 슬퍼하는 모습보다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너는 정말 그걸로 만족해? 문뜩 그런 의문이 들었다. 물론 미츠야가 말을 하지 않았어도 사노 만지로, 그를 미워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미츠야를 가장 가까이서 본 사람이자 치후유의 가장 오래된 친구로서 그들이 얼마나 도쿄 만지회를 아꼈는지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미츠야는 도대체 어떻게 자신을 죽인 이를 미워하지 말라고 말할 수 있을까. 팔로 대충 얼굴을 문지르며 유이가 붉어진 눈으로 그 문장을 노려보았다. 그러고는 편지를 쥐고 있던 손을 축 늘어트리고는 고개를 치켜들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혀, 타카시. 미츠야의 바람대로 조금만 슬퍼하고 웃으면서 살아가고 싶다가도 그의 죽음을 그렇게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좋아한다는 말로는 전부 표현할 수 없는 사람인데, 아무리 자신의 삶이 있고 그걸 살아가야 한다고 해도 어찌 감히 웃을 수 있을까. 세상의 절반을 잃었는데. 인생의 반을 함께한 사람이 없는데. 미츠야, 정말 내가 그러기를 원해? 심장박동이 점점 빨라졌다. 머리가 아찔했고, 어쩌면 서운했다. 고작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인가 싶기도 했다. 물론 제가 서운함을 느낄 처지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욕심을 내지 않는 그의 말에 울적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보통은 욕심내게 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기도 했다. 유이는 만약 자신이 미츠야였다면, 결코 조금만 슬퍼하라는 말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혹여라도 그 마지막 말을 너무나도 잘 이행해서, 정말 조금만 슬퍼하게 될까 봐. 이기적인 마음인가 싶다가도 대부분 사람이 이러할 거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유이가 느릿하게 숨을 내뱉고는 건조한 손으로 축축한 얼굴을 쓸어내렸다. 마지막 문장이 남아있었기에,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려서 편지를 다시 눈에 담는다.

[밝은 모습으로, 건강하게 살아줘, 유이. 언제나 사랑해.]

이렇게 말하면 조금만 슬퍼할 수가 없잖아, 타카시. 참고 있던 눈물이 기어코 범람했다. 뺨을 타고 길을 그리며, 뚝뚝 떨어져 편지를 적신다. 그녀는 편지를 쥐지 않은 손으로 꾹 주먹을 쥐었다. 사랑한다고 말하면 어떡해. 우리는 이제 함께 할 수가 없는데. 하지만 이렇게 말하면서도 유이는 미츠야의 작은 욕심이 기꺼웠다. 좋아해가 아닌 사랑해. 한평생 들어볼 일 없을 거라고 생각한 말을, 그가 한 것이었다.

“알고 있었으면 가지 말지. 치후유도 없는데, 너마저 없으면 나더러 어떡하라고…. 끝까지 바보 같고 다정하구나, 너는. 무섭지 않다고, 그렇게 말했지만… 죽는 게 안 무서운 사람이 어디에 있어. 미츠야, 너도 무서웠을 텐데. 아팠을 거잖아.“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유이를 가장 먼저 생각했다. 울지 말라고, 슬퍼하지 말라고. 오직 그녀만을 위해서 그리 이야기한 것이다. 죽음을 애도 받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을 텐데. 그가 그리 행동한 모든 이유에는 애정이 깔려있었기에, 유이는 서운함을 털어냈다. 그냥, 미츠야는 그래도 좋을 정도로 자신을 사랑한 것이었다.

“응, 미츠야 타카시는 이런 사람이지…. 그런 네 모습을 좋아해, 미츠야.”

편지를 소중하게 끌어안은 유이가 고개를 푹 숙였다. 여전히 눈물은 멈추지 않았지만 그녀의 마음 한구석에는 조금씩 기쁨과 환희, 뭐 그런 류의 감정이 차오르고 있었다. 따지자면 이것은 기쁨의 눈물이나 다름없다는 소리다. 편지가 마치 미츠야라도 되는 것처럼, 유이가 물기 어린 목소리로 작게 속삭였다.

“오늘까지만 좀 봐줄 수 있지? 이 편지를 쓴 네 잘못도 있으니까, 오늘만 울래. 너를 위해 더 울고 싶지만 네가 웃어달라고 했으니까…… 네 말 들을게.”

미츠야가 바라는 대로 환하게 웃는 게 그녀의 애도였다. 그와 동시에 이건 저를 사랑하는 그에 대한 예의였고, 미츠야를 사랑하는 스스로에 대한 예의였다. 미츠야가 그녀의 주변을 맴돌고 있다면 어쩐지 지금, 꼭 안아주고 있을 것만 같아서 유이는 눈을 감았다. 서늘하기 짝이 없던 방 안에 묘한 온기가 맴돌았고, 포근한 감각이 몸을 가득 둘러쌌다. 쿵, 쿵, 쿵. 안정적인 심장 소리를 들으며 유이가 나지막이 이야기했다.

“사랑해, 타카시.”

청춘은 저물었지만, 그녀는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었기에 청춘을 회상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저문 청춘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도 계속해서 곱씹고 머릿속에서 그려낼 것이다. 추억은 사라지지 않으니까. 어린 날에 손을 잡고 도란도란 이야기한 간지러운 마음도, 함께 바이크를 타고 갔던 바다의 포말도, 눈이 마주칠 때마다 부드럽게 휘어지던 다정한 눈빛도. 계속해서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그러니 사라지지 않는다. 그녀는 청춘의 잔재를 붙잡았다. 정말정말 사랑해, 타카시. 그 말에 대답처럼, 미츠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안해. 그리고 나도 정말 사랑해, 유이. 머릿속에서 꾸며진 소리라고 해도, 유이는 그 대답에 만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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