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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mitsuyui 2023. 6. 4. 00:57

(뫄님cm)

서늘한 바람이 스치고 지나가는 어느 겨울, 차갑게 녹아내리는 그 끝 무렵을 걷는 사람들은 마냥 신나고 즐거운 듯 보였다. 사람들이 파도처럼 출렁이며 움직였고, 각자의 삶에 열중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더없이 안정적으로 보였다. 그런 계절 속에서, 미츠야는 진지한 기색으로 유이의 손을 붙잡고는 불안정을 언급했다. 최근 도만이 여러 항쟁을 하면서 외부에서 들어오는 압박이 많다고, 일반인인 너를 건드리지는 않겠지만 혹시 모르니 조심하라고. 그러한 이야기를 한껏 걱정이 어린 투로 건네며 유이에게 몇 번이나 조심할 것을 당부하면서도 안심이 되지 않는 건지, 미츠야가 그녀를 잡은 손에 약간의 힘을 더 주었다. 맞잡은 손이 떨어지면 큰일이라도 생길 것처럼. 그런 그의 모습에 유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몇 번이나 당부에 대꾸했다. 응, 꼭 조심할게. 너무 걱정하지는 마, 언제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할 테니까. 네가 염려하는 일은 없을 거야. 더없이 다정한 균열이라고, 그 누구도 말로 내뱉지는 않았지만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기나긴 짝사랑이 끝나고 시작된 연애는 이제까지 불안정했던 적이 없었다. 그들은 서로를 채워주는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었고, 더없이 사랑스러운 연애를 하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감히 행복을 논할 정도로, 서로가 당연하게 존재하는 일상은 그림으로 그린 듯한 모습이었다. 그런 안정적인 수면에 파문을 던진 건 도쿄 만지회의 사정과, 도쿄 만지회의 일을 피할 수 없는 미츠야의 위치였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미츠야가 도쿄 만지회에 소속되어 있는 이상, 그와 긴밀한 관계인 유이 역시 그러한 종류의 일에 엮이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유이는 치후유와 가까이 지낸 덕분에 양키의 세계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미츠야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이 한편으로 어떤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속에 있는 부정적인 것을 밖으로 꺼내는 순간, 작은 균열이 한 순간에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 분명했기에.

양키는 생각보다 낭만적이다. 유이가 봐온 대부분은 그러했다. 물론 그러지 않은, 불량 그 자체의 양키도 존재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잘 안다고 해도 그래봤자 일반인. 유이는 위험을 약간 과소평가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미츠야의 걱정을 이해하고 있었고, 만약 위험한 상황이 온다면 안전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바로 피해야 한다는 생각은 늘 하고 살았지만 어디까지나 마음가짐의 이야기였다. 유이는 여전히 방과후에 학교에 남아 공부를 했고, 시험 기간 때처럼 늦게까지는 아니어도 노을이 질 무렵에 집으로 향했다. 결론적으로 그녀의 일상이 바뀌는 일은 없었다. 도쿄 만지회의 갈등이 얼마나 심화되고 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가 그것을 가벼이 여기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미츠야의 여자친구, 그리고 치후유의 친구. 그 외의 접점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그러니 그 갈등을 자세히 알 수도, 관여할 수도 없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당장 눈에 보일 정도로 심각한 것이 아닌 이상, 사람은 무뎌지고 익숙해지기 마련. 미츠야가 바빠질수록 유이도 옆에 존재하는 빈자리에서 눈을 돌리기 위해 한동안 공부에 치중했다. 주말에 마음 편히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는 미리미리 해야 할 일을 해두는 게 낫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주말의 데이트를 손꼽아 기다리면서도 문제집 속 글자에 집중할 수 있었다. 꼬물꼬물 기어가는 글자에 질리면서도 머리는 본능적으로 정답을 찾기 위해서 돌아간다. 익숙한 일상이 계속해서 지속되었다.

이질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미세하게 균열이 새겨지는 하루가 이어지던 어느 날. 금이 간 유리와 같은 불안함이 절정에 달한 것은 해가 지평선 너머로 넘어가 잔뜩 어두워진 시간이었다. 미츠야는 동생들을 재운 후, 씻어서 축축한 머리를 말리고는 책상에 앉았다. 한참을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자니 속 한구석을 무언가가 쿡쿡 찔러오며 불편하게 만든다. 연락이 오지 않는 유이에 공부하느라 많이 바쁜가 하고 괜스레 섭섭한 감정이 일기도 했고,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물론 평소처럼 집에 있겠지만, 그래도. 원래 이변이란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법이었기에 그 불안감을 지우기란 쉽지 않았다. 그리고 때마침 걸려 온 전화는 그 불안감에 부채질을 했다. 전화기 화면에는 딱딱한 글씨로 마츠노 치후유라는 발신인이 적혀있었다.

치후유가 늦은 밤 그에게 연락한 날과 유이가 유난히 연락이 되지 않는 날이 겹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아직 용건은 듣지도 못했는데 머리가 딱딱하게 굳는 것만 같았다. 설마 무슨 일이 있지는 않겠지, 같은 생각을 해봐도 한 구석의 부정적인 가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전화를 받자 들리는 급박한 목소리는 설마가 사람을 잡았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미츠야 군! 유이 누나가 아직 집에 안 들어왔다고 연락이 와서……. 혹시 미츠야 군이랑 같이 있나요?”
“아니, 여기 없어.”

미츠야는 짧게 부정하면서 급하게 겉옷을 입고 신발을 신었다. 치후유, 유이 친구들한테 연락 돌려봤어? 나도 같이 찾을게. 속에서는 불안과 걱정이 드글드글 끓는데도 애써 이성적인 척 이야기를 하며 그가 현관문을 열었다. 깊게 잠든 동생들이 깨기 전까지, 어떻게든 유이를 찾아야 했다. 그리고 만약 누가 자신을 노리고 유이를 건드린 거라면…. 미츠야는 거기까지 생각하고는 잠시 마른세수를 했다. 정말 만에 하나 그런 일이라면, 그는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할 것 같았다. 좋아한다고 이야기 해놓고는 지켜주는 것 하나 못한 자신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을까. 그는 땅을 박차고 달리며 동네를 뒤지기 시작했다. 유이에게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받을 기미는 보이지 않는 채로 계속해서 신호음만이 갈 뿐이었다. 학교에서부터 유이의 집까지 오는 길, 사람이 없는 공원, 인적이 드문 골목길부터 다른 집단의 본거지까지. 없는 흔적을 찾겠다고 고작 한두 번 가본 곳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찾은 거라고는 겨울의 서늘한 바람뿐. 수많은 생각이 오가고 당사자에게 닿지 않는 신호음이 원망스러워질 무렵, 영원할 것만 같았던 신호음 너머로 딸칵 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정말 정말 미안해! 친구랑 놀다가 연락을 못 봤어. 가방에 넣어둬서 벨 소리가 안 울리는 바람에…. 부모님께는 방금 연락드렸어. 많이 걱정했다고 들었는데…….”]
“….”
[“저기, 타카시…. 많이 화났어? 걱정하게 만들어서 미안해.”]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가쁜 숨을 내뱉었다. 그래도 큰일이 생기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안심이 되기도 했고, 유이의 잘못이 아닌 걸 아는데도 괜스레 원망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뻔히 지금 상황을 알고 있을 텐데, 이쪽 세계에서는 문제가 생기면 노려지는 건 주변인이라는 걸 알고 있을 텐데도 태연한 그녀에 속이 상했다. 걱정했냐고? 그 짧은 시간 동안 무슨 생각을 했는지 유이는 모를 것이 분명했다. 수십수백 번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다면 스스로를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 건드린 사람을 전부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몇 번이나 부정적인 생각을 반복하고 스스로를 원망했는지.

“요즘 심상치 않으니까 조심하라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 지금 몇 시인 줄 알아? 벌써 열 시를 넘겼어. 이 시간까지 도대체…!”

툭 튀어나온 말이 막을 새도 없이 흘러나와서는 순식간에 번진다. 걱정이 원망으로 변질되는 건 한순간이다. 전화기에서는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만이 울렸다. 그러다가도 문뜩 이 시간에 혼자 집으로 향하고 있을 유이가 걱정이 돼서, 미츠야는 말을 잠시 멈추었다. 전화기 너머로 미안해, 라는 소리가 작게 튀어나오고 있었다.

“어디야.”
[“학교 후문 지나가고 있어….”]
“이 시간에 혼자 가는 것도 위험해, 데려다줄게.”
[“아니야, 괜찮아! 타카시도 힘들 텐―”]

뚝. 전화기 너머로 허둥지둥하더니 이내 버튼을 잘못 누른 건지, 전화가 뚝 끊겼다. 미츠야는 잠시 전화기의 화면을 바라보다가 주머니 속에 전화기를 넣고는 달렸다. 유이의 얼굴을 직접 봐야지 안심이 될 것만 같았다. 답답하게 차오른 화를 어떻게 할 건지에 관해서는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냥, 지금 당장은 유이를 봐야만 할 것만 같았고, 그 외의 생각은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머리가 멍했다. 정말 내 생각은 하나도 안 했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섭섭함을 넘어서서 의문이 들기도 했다. 도대체 나는 무슨 의미야? 그래, 지나치게 나아간 부정적인 사고라는 걸 안다. 하지만 유이가 정말 저에게 의미를 두고 있었다면 그 늦은 시간 동안 걱정하고 있을 자신에게 연락 한 통이라도 남기지 않았을까.

좋아한다고 말해준 그날의 공기를 아직 잊지 않았다. 그 진심을 의심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가끔은 큰 의미가 되지 못하는 것만 같아서, 혹시라도 이 관계가 그녀의 미련이 되지 못할까 봐 겁이 난다. 정말 최악이네, 나. 미츠야는 생각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끊임없는 궤변이 이어진다. 그리고 학교 후문에 서 있는 유이를 보자 생각으로 가득 찬 머리가 펑 터졌다. 세상이 하얗게 변하는 것만 같았다.

“걱정했어.”

턱 막혀오는 숨을 겨우 내뱉으면서도 미츠야는 입을 열었다. 복잡하게 얽혀 들어 가는 감정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마구잡이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예상은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다. 정리되지 않은 말들이 그의 입술 사이로 튀어나왔다.

“큰 걸 바란 게 아니잖아. 고작 연락 하나…, 어렵지 않잖아. 네가 이 시간이 되도록 집에 안 들어왔다는 소리를 듣고, 울리지 않는 전화기를 보면서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아? 물론 나도 알아, 이게 전부 나 때문인 거. 네가 나랑 사귀는 게 아니라면 이런 불편한 일 겪을 필요도 없겠지.”
“타카시, 그러니까….”
“연락! 해줄 수 있잖아. 뛰어오는 내내 혹시라도 잘못됐을까 봐, 나 때문에 너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겼을까 봐, 연락 오지 않는 전화기를 계속 붙잡고 계속 걱정했어. 얼마 걸리지도 않는 건데, 나한테 고작 일 분 남짓 되는 시간도 써줄 수 없었던 거야? 나는 그 정도 가치도…….”

너저분한 말이 우르르 쏟아졌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자각할 틈도 없이 미츠야는 속에 있는 것을 부었다. 당황한 유이의 얼굴을 보자 아차 싶었지만 이미 내뱉어 버린 말은 주울 수 없었기에 미츠야는 주먹을 꽉 쥐었다. 화가 머리를 가득 채워 이성적인 사고가 안 되는 순간에도 차마 이 모든 게 유이의 잘못이 아니라서, 오갈 곳 없는 화를 마구잡이로 쏟아낼 수가 없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화를 내기란 그리 쉬운 게 아니니까.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미츠야는 입만 열었다가 닫기를 반복할 뿐, 또 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어쩌면 그를 올려다보는 유이의 얼굴이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웃는 모습만 보고 싶었는데 울려버렸다. 머릿속이 적색 경보음으로 가득 차서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없었다. 그 와중에 유이는 울지 않으려고 소매로 눈망울에 맺힌 물을 닦아내며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런 말 하지 마! 그렇지 않아, 타카시는 나한테 엄청 소중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야. 흡…. 걱정시켜서 미안해.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 노는 중에 시계를 못 봐서 이렇게 시간이 지난 것도 모르고 있었어. 네가 걱정할 거라고 생각을 해야 했는데, 다음부터는 조심할게, 그러니까 화내지 마…….”
“유이, 그게, 그러니까.”

어쩌지. 특히 또래의 여자애를, 좋아하는 사람을 달래본 적은 한 번도 없었기에 미츠야는 허공을 부유하는 손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다. 섣부르게 말을 내뱉고 후회하는 것마저, 오늘따라 싫은 행동만 한다. 미츠야의 손이 유이의 어깨를 둥글게 감싸 안았다.

“너한테 화난 거 아니야, 미안해. 그냥, 내가 아니었으면 네가 이런 일을 겪지는 않았을 테니까 괜히… 괜히 너한테 화풀이를 했어. 울지 마, 너를 속상하게 할 생각은 아니었어.”

사랑은 참 순종적이다. 상대가 우는 순간 뭘 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으니, 사랑은 상대의 위주로 돌아가는 순종적이기 짝이 없는 감정이나 마찬가지였다. 미츠야는 유이를 꽉 끌어안았다. 미안하다는 말이 이렇게 울적했던가. 한순간에 미츠야는 화가 났던 시간을 잃었다. 이렇게 사과를 하는 연인에게 더 이상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좋아한다는 건 언제나 고달프다. 양키가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건 언제나 고난과 역경이 따른다. 그런데도 매번 유이가 좋아서, 이기적이게도 멈추자는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그러니까 지키는 건 그의 몫이었다. 놓아줄 수 없다면 미츠야가 유이를 지켜야만 했다. 그는 최대한 다정한 목소리로 유이에게 이야기했다.

“울지 마, 유이. 나도 미안해. 갑자기 화내고 그래서 놀랐지? 절대 너를 무섭게 할 생각은 없었어. 그냥, 너를 잃는 게 나한테는 겁이 나서 과민하게 반응한 것 같아. 뚝, 눈 쓰라리겠다.”

울음을 참느라 훌쩍거리는 소리를 내던 유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잠시 그렇게 거리에 서 있었다. 서로의 감정이 다시 잔잔한 수면으로 변할 때까지, 파문을 일으킨 돌멩이가 가라앉을 때까지.

정적을 깬 건 미츠야였다. 너무나도 늦어버린 시간 탓에 전화기에 문자가 쏟아져서, 그는 유이의 가방을 자연스럽게 가져가서 매고는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시간이 많이 늦었네, 집에 가자. 데려다줄게.”
“… 있지, 타카시.”
“응.”
“단 한 번도 네가 나한테 아무렇지 않았던 적 없었어. 좋아해,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너를 걱정시키고, 그런 생각을 하게 해서 미안해. 다시는 네가 걱정하지 않게 조심할게. 약속해.”

계속해서 아까의 말이 마음에 걸렸던 건지, 그녀가 진지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유이는 새끼손가락을 내밀었고, 미츠야는 자신의 손가락을 엮었다. 그들은 집으로 향하는 내내 새끼손가락을 건 채로 걸어갔다. 집으로 향하는 길은 짧았고, 고요한 적막을 깨고 추위에 떠는 길고양이가 길게 울었다. 금이 가던 유리가 서서히 붙기 시작한 겨울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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